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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일기, 교류

글의 바다 - 감상문

by @Zena__aneZ 2025. 1. 15.

저번 비행에 이어 작성하는 두 번째로 쓰는 감상문입니다.
비행은 책을 덮을 때 비로소 그것을 준비하는 느낌이었다면, 글의 바다는 첫 장을 펼쳤을 때부터 이 안에 들어와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날개 없는 이의 날개 있는 삶과 뭍에서 꿈꾸는 바다라니. 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한때의 꿈결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글의 바다에서 제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강렬한 물음이 떠밀려왔습니다.
 
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작가님도 이 고민을 마치 오랫동안 했던 것처럼 느껴졌어요. 삶이란 무엇이길래 이렇게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기다리는가? 하는 것이요. 왜 영혼이 떠난 육신을 묻어야 하고, 왜 떠나간 것을 기억하면서 계속 그리워해야만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가 알기는 할까요? 작가님이 쓴 것처럼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도 모르는 답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 해답을 찾으려 필사적일까요?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 필사적인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을 읽을 때, 저는 비로소 겨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봄을 앞에 둔 겨울이요. 봄은 만물이 피어나는 계절이지만 겨울에게만큼은 잔인하잖아요. 봄이 오면 찬란한 죽음을 맞이할 겨울이 되었다는... 쉽게 설명하지 못할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갑니다. 끝을 알면서도요. 이 겨울이 머지않아 다가올 따뜻한 봄날에 끝날 것을 알면서도요. 알면서도 살아가는 이유는, 끝을 알기에 더 발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의 종착점은 언제나 심장이잖아요. 우리의 붉은 피는 종착점을 알고 있다고 해도 좌절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종착점을 알고 있기에, 그 끝을 보고 더 힘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을 사는 것이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질문을 하나 더 얻었습니다.
 
우리는 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살아가야만 하는가?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기다리는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 이유를 찾고, 해답을 내는 과정을 삶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글의 바다에서 질문을 얻고, 이유와 해답을 함께 엿보았어요.
대체 삶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길래 반드시 감내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사랑, 사랑이지요. 오로지 그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반드시 품은 채로 살아야 합니다. 바다로 영영 떠난 사람을 기리는 것도, 봄을 앎에도 겨울을 살아가는 것도, 여름의 축축함을 들쳐매고 오래도록 걷는 것도 전부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니, 그것을 이고 살아가야만 하는 겁니다. 저는 작가님이 꼭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작가님의 필명처럼, 저는 글의 바다에 온전히 잠겼네요. 이 글의 바다에 더욱 길게 머물러도 좋을 듯합니다. 여러 질문을 얻고, 또 해답을 내도 괜찮을 것 같고요. 이렇게 감상문을 적다보니, 감상문보다는 작가님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한 것만 같아요. 어쩌면 제가 느낀 모든 것이 작가님의 의도가 아닐 수도 있겠죠. 다만 작가님의 글이 저에게 큰 울림을 주고, 저에게 어떠한 것을 일깨워줬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책을 내신다면, 그것도 글의 바다를 타고 넘어와 저에게 닿고, 그것이 또 작은 글이 되어 작가님에게 닿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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