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은 언제나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물안개가 낀 적막한 곳은 사람의 발길도, 괴물의 흔적도, 하물며 사람이 아닌 외적인 것의 손길도 잘 닿지 않는다. 그저 고요함, 그것뿐이다. 카모라트는 가만히 숨을 내쉰다. 통증이 머무르는 몸에 축축한 공기가 닿는다. 가끔은 이 고요 속에서 하염없이 사라지거나 짓눌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카모라트는 언제나 이 깊은 곳에서 홀로 지냈다. 이따금 찾아오는 귀중한 손님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낸다. 그것이 지독한 외로움을 불러올지도 몰랐으나 몸에 새겨져 사라지지 않는 깊은 흔적이 통증을 남겨 외로움이 지워진다. 감정을 망각하는 방법 중 가장 잔인한 방식이었지. 카모라트는 물기 어린 숲만큼이나 고요한 눈을 하고는 수풀이 흔들리는 것을 응시한다. 지독한 푸름에 눈빛이 흐려진다. 문득 상처에서 홧홧한 감각이 밀려든다. 몸에 감긴 줄기를 풀어낸다. 진득한 상처 위로 열기가 흐른다. 그것을 응시하던 자는 다시 깨끗한 줄기를 감아 상처를 치료한다. 평생을 아파할 수밖에 없는, 이제는 사람조차 아니게 된 자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창백한 백색의 눈이 감겨 보이지 않고, 적갈색의 머리카락만이 흐린 바람에 나부낀다.
한때는 사람이었던 자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생각한다.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린 것은 흐릿한 감각만을 끌어안는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애초에 사람이 맞긴 했는지, 단지 정신착란으로 사람이라고 여긴 것은 아니었는지. 모든 것이 착각이었는지... 스스로도 헷갈릴 지경인데 다른 이들이라고 오죽할까. 사람에게는 괴물이라 여겨지고, 괴물에게는 이형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고통스러워 도망치고 만 것은 깊은 숲속에서 다시 눈을 떴다. 밝던 하늘이 어둑하다.
"..."
카모라트는 한쪽만 남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문득, 다리에서 욱신거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지만 겨우 버티고 서있었다. 옛적부터 버티는 것만큼은 잘했었다. 무언가를 참고 견뎌내는 것 따위 말이다. 고통이나 적막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마음을 그저 견디고만 있다. 무언가를 견디는 것에 능하지 못했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속이 울렁거리다가 곧 나아진다. 어쩌면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것이 그를 여전히 인간으로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육신과 영혼이 아무리 변질되어도, 야트막한 마음만큼은 틀림없는 인간의 것이었으니까. 이 고통만이 인간임을 증명한다니, 우스운 일이다.
아픈 걸음을 느릿하게 옮긴다. 천천히, 서서히. 어둑한 하늘 아래를 거닐다가 몸을 거대한 고목에 기대었다. 몸이 잘게 떨린다. 아무리 견디는 것을 잘 한다고 한들 고통은 여전히 고통이었으니. 변질된 몸과 영혼이 지독하게도 피로하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거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카모라트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 밤 속에 몸을 뉘었다가 일어나면, 모든 것이 나아져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