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의뢰가 하나 들어왔는데."
"의뢰?"
도끼를 손질하던 사람이 주술봉을 등에 맨 상대에게 시선을 던졌다. 처음 말을 꺼낸 이는 종이 몇 장을 건넸다. 에우레카 오르토스. 세상을 구한 영웅이 아니고서야 도전할 엄두도 낼 수 없는 곳.
"마기 파편을 구해달라...? 어디에 쓸지 감도 안오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야. 어쨌든, 같이 갈 거야? 이미 다른 둘은 진입한 것 같던데."
마기 파편만 구하러 가는 거라면 따로 진입해 모아오면 된다. 초반까지는 둘도 부담이 없으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에테라이트에 몸을 싣는다.
가벼운 부유감이 지나가면 어느덧 에우레카 오르토스의 진입 구간이다. 이곳은 아무리 숙달된 모험가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곳의 마물들은 바깥의 마물에 비하면 몇 배, 혹은 몇십 배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나마 종말과 싸워본 그들이기에 덜 긴장할 수 있었겠지.
"파블로앙, 마땅한 치료 없이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아마도."
빨리 끝내고 나오자. 그 말을 듣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진입했다. 기묘한 에테르의 흐름, 피부 위를 느릿하게 훑고 지나가는 축축한 바람.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이 물방울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클루디는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파블로앙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마기 파편은 몇 개 모아야 하지? 총 6개를 구해달라고 했으니까... 우리가 3개를 구해가면 될걸. 슬슬 하이퍼 포션도 다 써가는데 한두 개 더 가져가야 하나. 꽤 많이 구해놓지 않았어...?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각자 무기를 꺼낸다. 서로 눈빛을 몇 번 주고받은 뒤- 파블로앙이 먼저 도끼를 횡으로 갈라내듯 휘둘렀다. 까드득, 하며 긁히는 소리와 함께 불의 구체가 공중에서 화려하게 터진다. 촘촘하게 짜낸 에테르의 그물-마배리어-이 파블로앙의 주변에 휘감긴다. 치명상 한 번은 피할 수 있는 보호막. 그것을 곁눈질로 한 번 확인하고 광범위하게 공격을 날린다. 새빨간 불꽃같은 조각이 흩날린다. 그 사이에 뇌격이 퍼진다. 한 몬스터를 중점으로 퍼져나간 뇌격, 곧바로 흑마법 문양을 그리고 에테르를 빠르게 회전시켜 불꽃을 세 번 터트리고, 다시 거대한 불꽃을 날린다. 가까이에만 있어도 피부가 따가워질 듯한 공격. 파블로앙은 터지는 밝은 빛에 잠시 눈을 감아내고 직감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가 가진 원초의 힘은 계산된 힘보다 순수함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모든 것을 압살하는 육감인 것처럼. 가장 약해진 마물 하나에게 도끼를 내려찍는다. 무너지는 마물의 몸을 일시적인 방패로 삼으며 다시 도끼를 고쳐잡고 다른 마물의 몸을 갈라낸다. 감은 눈 위로 새겨지는 밝은 불빛을 느낀 후 다시 눈을 뜬다.
"오늘따라 마물의 낌새가 이상한데."
"마치 주변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이 부근, 에테르의 흐름도 이상해."
파블로앙은 바닥에 떨어진 마기 파편 하나를 주워든다. 클루디는 잠시 찬 숨을 내쉬곤 바닥을 발로 가볍게 구른다. 바닥에 그려진 흑마법 문양이 다시 피부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기묘한 에테르의 흐름과 직감으로 느껴지는 피부에 닿는 살기.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마물이? 이곳에 마물이 있는 건 처음 아닌가? 고민은 소용이 없으니 다른 방으로 향했다.
파블로앙이 다른 방으로 넘어가려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클루디가 주술봉을 들었다. 파블로앙을 타겟팅한 마물에게 바로 정신교란을 내리꽂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파블로앙은 철벽방어 태세를 취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느린 대처를 하지 않았으나 파블로앙에게 둘러진 마배리어가 깨져나갔다. 다행히 부상은 피할 수 있었지만, 저 위력 그대로 맞았다면... 섬짓한 감각을 넘기며 몸을 일으킨다.
"... 저거 잡으면 이번 의뢰는 끝낼 수 있겠는데."
클루디는 그리 중얼거리곤 주술봉을 고쳐잡았다. 그러다 파블로앙을 한 번 부르곤 어떠한 말을 전한다. 혹시나 하고 챙긴 마법 효과가 담긴 구슬을 흔들어보이며. 파블로앙은 빠르게 생각을 갈무리하고 도끼를 한 손으로만 잡고 클루디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든다. 체격차 덕분에 쉽게 안아들 수 있었다. 순조롭게 강한 마물의 눈길을 끌며 걸음을 빠르게 한다. 클루디는 똑바로 마물을 바라보며 구슬을 손 안에서 깬다.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마물의 몸을 순식간에 약화된다. 주술봉을 꾹 눌러잡으며 미지의 언어를 읊는다. 검보랏빛의 연기가 구체의 형태로 모여 찢어지듯 사라지고, 다시 한 번 사라진다. 주변에 떠다니던 얼음 구체가 사라지고, 피부 따가운 에테르의 흐름도 갈무리된다.
아까 상자에서 챙기길 잘했네,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돌발상황은 언제 생길지 모르니까. 바닥에 떨어진 마기 파편 세 개를 주워들었다. 어떻게 다 모으긴 했다며 짧게 한숨을 쉬곤 그 장소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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