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잡는다. 깊은 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몸을 움직인다. 검을 들고 추는 춤은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했다. 어쩌면 그것을 들고 움직이는 자의 마음을 담아낸 것일지도 몰랐다. 격정적이며 절도 있는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함을 들게 만들었으나 정작 그의 마음은 심연에 처박힌 것보다도 어두웠다. 속이 울렁거린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실력으로는 누구도 지킬 수 없다. 결국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스럽다. 아침이 오지 않는다. 어쩌면 아침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햇살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칠흑 같은 밤의 달빛이 잘 어울리니 그저 빛 아래에서 눈을 감아버린다.
검무를 이어간다. 온몸이 상할 정도로. 빌어먹을 정도로 높은 정령과의 친화력 덕분에 그들의 걱정이 끊임없이 들린다. 날카로운 검으로 걱정하는 소리를 가르고서야 평온해졌다. 그는 길 잃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평생 찾을 수 없는 해답이 필요했다. 어째서 나는 사랑스러운 동생을 지킬 수 없었는가. 어째서 나는 애매한 존재인가. 어째서 나는 또 홀로 남겨졌는가. 오로지 감정뿐인 해답만이 지독한 불면까지 없앨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해답은 언제나 손안에 있었다. 그저 모른 체했을 뿐.
"살, 살려줘. 살려-"
"저승에서 내 동생에게 사죄해."
그는 검을 들었다. 사람 말소리 흉내 내는 마수를 벤 지 몇 주가 지났는지, 혹은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지도도, 나침반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혀 마수만 사냥하는 괴물로 지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다. 그를 알고 지낸 사람들은 차마 그를 말릴 수조차 없었다. 미쳐버리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마수에게 산채로 뜯어 먹히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보통, 그것을 눈앞에서 보지 못한다. 간단한 이유였다. 그들은 사람들 깊은 곳으로 끌고 가 먹어 치우니. 하지만 그는 동생의 유품이라도 찾고자 아득바득 숲으로 기어 들어갔으니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만 것이다. 그러니 미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하지만 복수심이라는 것도 결국은 언젠가 말라 사라질 우물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는 겨우 27살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그는 수많은 마수를 갈랐으나 자기 자신마저 그 마수와 같아지는 감각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손을 내려다본다. 옅은 새벽의 햇살이 볼품없이 망가진 손을 비춘다. 몸이 욱신거린다. 숨이 버겁다. 눈에선 투명한 비와 같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정령이 그의 앞에 선다. 그는 여전히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
"..."
"넌 충분히 강했어."
내가 강했다면, 왜 지킬 수 없었지?
그건 신이 와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결국 사람이고, 사람의 생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아무리 지키고 싶은 이가 있더라도 완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깨닫고 있던 사실이 또 심장이 욱신거리도록 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결국 사람이라서 지킬 수 없었구나. 결국 그랬던 것이구나. 어쩔 수 없었구나. 고개를 든다. 그의 유일했던 가족이 가장 좋아하던 시간.
아, 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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