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너머를 바라본다. 푸른 숲에는 하얗게 빛바랜 바람이 너울거린다. 들이쉬는 숨이 차갑다. 마치 숨 쉬는 것에 중독된 듯, 숨을 하나하나 고를 뿐이다. 미스티는 숨 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다. 어린아이의 손을 놓은 사람들, 멀쩡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가던 사람들, 길거리에 내팽개쳐진 사람들, 잠에 들면 잡혀갈까 두려워하던 사람들, 수마에 잠겨 사라지던 사람들... 미스티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잠에 들면, 세상에서 버려지면 이 창백한 숲으로 오게 된다. 그것은 신의 안배인가? 미스티는 그런 것은 몰랐다. 그저 이것이 새롭게 주어진 삶이고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
이 빛바래고 창백한 숲은 사람들의 모든 슬픔과 원망에서 탄생한 공간이었다. 미스티가 여기로 온 것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작은 소녀를 숲에 이끈 것은 신의 안배인가? 운명은 신이 점지해주는 것인가? 그저 자그마한 우연인가? 우연은 운명이 될 수 있나? 그 본질적인 질문은 결코 미스티를 떠나지 않았다. 미스티에게 새롭게 주어진 운명은 저주일까, 새로운 기회일까? 어쩌면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소용이 없지 않을까? 주어진 기회를 충실히 행한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마음 놓고 복수할 기회를 잡았으나 미스티는 그러지 못했다. 숲에 끌어들여지는 사람들은 그저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소녀에게 주어진 운명이 참으로 우습다. 사람을 구하지도, 그렇다고 죽이지도 못한다니. 애매하기 짝이 없다. 이럴 거면 마음까지도 전부 불태워주길 바랐으나 바람은 언제나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 당신, 그곳에 있으면 죽을 거예요."
사람의 마음이 애매하다. 언제나 그랬다. 마음을 버리겠다 다짐하고 손을 뻗으니 그곳에서 다시 사람의 마음이 생겨난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손을 뻗은 것은 동정심도 애절함도 아닌 다른 것이었다. 같은 처지인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한 안도감 따위가 심장 속에 꿈틀거리는 것이 심히 불쾌했으나 이미 뻗은 손을 거둘 수도 없었다. 내 손을 잡을지 말지는 오롯이 당신의 결정이에요. 미스티는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다.
"..."
미스티는 잠시 고개를 든다. 저기 멀리 빛바랜 푸름이 떠다닌다. 미스티는 항상 불쾌함을 먹고 사는 듯한 감각을 기분 나쁘다고 여겼다. 사람에게 버려졌으나 끝내 사람의 손을 잡고 마는 애매함이 역겹도록 싫었다. 어쩌면 제 옆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도 같은 마음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마음까지 불태우길 바랐으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에 대한 안도감도 존재했다. 인간에게 버려졌으나 아직도 인간일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었다. 미스티의 옆에 서있던 이는 하얀 담요를 미스티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미스티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지만 포근함까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나 봐요. 미스티는 읊조리듯 말했다. 옆에 서있던 사람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이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을 사랑한다. 모두를 사랑한다. 복수심을 가지고 있던 것마저도 사랑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해서, 사랑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은 달갑지 않았다.
"산책, 더 하시겠습니까?"
미스티는 그의 굳건함이 퍽 마음에 들었다. 어떠한 말에도 흔들림 없는 태도는 미스티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마음이었으니까. 미스티는 창백한 숲만큼이나 하얀 손을 내밀었다. 상처 하나 없어 보이는 흰 손을 그가 잡는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조차 모호한 숲 속에서 산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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