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고쳐 잡는다. 숨이 차갑다. 아직 큰 부상은 없었지만 다들 지쳐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류연은 빠르게 시선을 굴린다. 급소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지역의 토벌대에 많이 참여해 봤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이곳은 혹독하게 추웠고 매서웠으며... 저것은 수많은 것을 짓밟은 다음에야 만족하고 잠에 들 것 같았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선 안 됐고. 일반적인 화살은 통하지 않았고, 흠집도 쉽게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치명적인 곳이라면... 용이 거대한 꼬리를 휘두른다. 다리를 크게 다친 용병 한명을 잡고 높이 뛰어 뒷편으로 빠진다. 일단 상처를 치료하고 오라는 말을 남긴 후, 제 목도리를 풀어 그에게 건네준 뒤 최전방으로 향한다.
"용병 한 명이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어요. 다른 쪽은 어때요?"
연이은 부상 소식에 이를 악문다. 이 상황에서 눈보라까지 치고 있었다. 사람에게 너무나도 불리한 환경이었지만 물러날 수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용병 조금 죽는 게 나았으니까. 그 말을 들으면 분명 누군가가 엄청 혼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입가에는 허탈함 깃든 미소가 띄워졌다. 제가 가장 앞에 설게요. 그 말을 하곤 창을 다시 한번 고쳐 잡고 앞에 선다. 류연은 이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이었지만, 실력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최전선에 있던 용병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류연은 창을 고쳐 잡았다. 이런 거대한 괴수를 상대할 때는 팔다리를 먼저 쳐내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겉이 너무 단단했다. 그렇다면, 가장 연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가야만 했다. 창을 횡으로 길게 휘두른다. 궤적을 따라 생긴 파동이 괴수의 높이 든 팔을 밀쳐 균형을 잃게 한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채 다른 용병들이 공격을 쏟는다. 용의 배에는 단단한 비늘이 덜 자라나 있다. 그렇다면 몸통을 파고들어 공략을 해야 했지만 그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기세 좋게 앞발을 들어 내려치지만 촘촘하게 짜인 마나 그물이 펼쳐져 일시적인 방패가 되었고, 그 사이를 검붉은 검기가 할퀴고 지나가며 쏟아지는 푸른 파편을 태워버리듯 갈라냈다. 그 사이에 머리끈이 끊어져 버렸는지 옅은 보랏빛 머금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린다. 그것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로 시선을 들어 괴수를 바라본다. 앞발 하나만 망가트린다면... 그렇다면 승산이 있어? 얕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질문 하나가 들려온다.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예요."
드래곤의 재생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아무리 깊은 상처가 나도 쉽게 회복한다. 그렇다면, 아예 망가트린다면요? 잘라낼 정도로 크게 망가트린다면, 신체 균형도 무너질 거예요. 날지 못하게 날개막도 같이 찢어버려야 하겠고. 용병들은 빠르게 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더 시간을 끌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저것의 핵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어! 양 앞다리 사이에 핵이 있고, 눈 뒤에는 큰 결정이- 드래곤이 얼음 결정을 내뱉는다. 그것을 피하며 빠르게 정리한다. 드래곤의 핵을 찌르는 것은 류연이, 그리고 눈 뒤편까지 찌르는 것은 다른 용병이 해결하기로.
용병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수많은 공격들이 우아하고 격렬하게 내리 꽂힌다. 마나의 흐름조차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흘러가 미약한 통증을 남긴다. 류연은 가장 앞에서 창을 들고 있었다. 유성우처럼 떨어지는 공격들 사이로 유려하게 움직이며 치명적인 공격을 가한다. 마나와 검기가 뒤섞인 푸르게 벼려진 날이 드래곤의 핵을 깊게 파고든다. 핵을 찔린 드래곤은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핵을 공격한 이를 떼어놓으려 하지만-
"지금이에요, 눈을 찔러요!!"
다른 용병이 단검을 역수로 쥔 채 뛰어올랐다. 공중에는 연보랏빛 발판이 생기고, 그것을 놓치지 않은 채 빠르게 밟고 뛰어올라 드래곤의 눈을 깊게 찔러 들어갔다. 드래곤의 몸부림이 격해진다. 그것을 눈치챈 다른 용병은 재빨리 떨어졌으나 핵을 찌른 류연은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핵에서 흘러나온 끔찍한 한기가 류연에게 들러붙었다. 아직 얕았다. 설령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지금 이것을 먼저 죽여야만 한다. 창을 핵 깊숙이 더 찔러넣고는 아찔한 한기에 굳은 채로 바닥에 내팽겨쳐진다. 온몸에 알싸한 통증이 퍼지지만, 오히려 그 통증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었다. 드래곤이 쓰러진다. 류연은 억지로 일어나 그 모습을 눈에 담다가 그대로 주저앉는다. 다른 마법사가 다가와 류연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주지만 그것도 마다하고 다시금 일어난다.
북부의 대표는 그 모습을 전부 지켜봤다. 끝까지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모두 합심한 용병들의 모습, 수많은 부상자, 그리고 결국 드래곤을 죽인 이의 모습. 그는 그것에서 누구를 겹쳐 보았을까. 어쩌면 그의 오랜 친우를 보았을 수도 있었다.
"대표님, 니플헤임 토벌... 무사히 끝냈습니다."
이후에는 형식적인 말이 오갔다. 사상자가 어느 정도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류연은 말을 잇고, 잠시 숨을 내뱉고는 말을 잇는다. 급하게 갈 곳이 있는데, 이만 가봐도 괜찮을까요? 허가를 받은 뒤 바로 걸음을 옮긴다. 류연이 갈 곳에 대해서 들은 마법사들은 급히 이동 스크롤을 준비해주었다. 고마워요, 귀한 걸텐데... 다른 지역으로 보고하러 가는 거라면 당연히 준비해야죠. 덕분에 사상자가 정말 적었어요. 류연은 옅게 미소를 지은 뒤 스크롤을 찢는다. 그때 마주한 북부이 대표의 모습은 유난히도...
건조하고 텁텁한 공기가 한기 가득한 몸을 그나마 따뜻하게 해 주었다. 류연은 서부의 길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선 서부의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소식을 들은 걸까? 류연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던 것일지도 몰랐고, 어떠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대표님, 토벌 무사히 끝냈어요."
"그걸 이야기해 주려고 치료도 안 하고 찾아왔나? 몸 좀 챙기라니까."
그래도, 바로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류연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몰랐다.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가 유일한 이유였다. 그들은 서로 과거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시야가 아득해진다. 아무리 스크롤로 이동했다고 해도 이미 타격을 받은 몸으로는 엄청난 무리였다. 쓰러지는 몸을 가볍게 받쳤다. 수고했네. 그 말의 저 너머에는 힘들게 찾아오게 했다는 미안함과 안도감이 있었고, 또한 후련함도 있었다. 드디어 긴 악몽이 끝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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