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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잠들지 못하는 밤.

by @Zena__aneZ 2024. 2. 14.

이따금 잠에 들지 못한다. 종종, 어쩌면 자주, 잊을 때쯤이면 다시 떠오르는 길 잃은 그리움에 감은 눈을 뜬다. 길 잃은 사람처럼 밤을 떠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 구원받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프리지아의 불안감은 굉장히 컸다. 더 어렸을 때에는 며칠 동안 잠에 들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프리지아는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사람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분명히 그 사람에게 구원받았다. 푸른 갑옷 속에 숨어있는 다정함이 프리지아를 다시 일어서게 했지만, 동시에 다시 무너지게 했다. 이토록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밤산책을 나선다. 이 모든 감각이 잊히길 바라며 이어가는 새벽산책은 서늘했다. 길게 늘어트린 강렬한 주홍빛의 머리카락은 달빛을 머금고 은은하게 빛난다. 낮에는 그토록 강인하게 빛나는 불꽃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어둠 속에 피어난 꽃망울과 같았다. 이토록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혹은 당신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길 잃은 질문이 허공을 맴돌 때, 프리지아는 익숙한 기척에 고개를 돌린다.
 
"... 단장님?"
 
"프리지아, 잠에 들지 않고..."
 
고운 밀빛을 띠던 머리칼은 언젠가부터 검게 물들었다. 단장이라고 불린 루베오는 가만히 시선을 향하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옆에 섰다. 그분이 또 그리워진 겁니까? 프리지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단장님도 그분 생각이 나서 나오신 건가요? 루베오도 같이 고개를 가벼이 끄덕였다.
밤의 기사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수많은 저주를 짊어지고, 수많은 악을 처단했고,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소멸했다. 괴물이 되기 전에, 누군가를 해치기 전에. 그리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누군가를 해치기 전에 사라진 것은 자의였을 것이고, 잊힌 것은 저주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잊힌다는 사실은 그 존재가 알고 있었겠지. 알면서도 사라진 것은 희생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 지극하게도 이타적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손에 구원받은 아이들은 이만큼이나 커서 약자를 지키는 사림이 되었으니 이것은 또한 운명의 한 흐름이었다. 프리지아와 루베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밤공기는 수없이 많이 쌓인 감정을 씻어내려가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단장님, 내일 릴의 자리를 이어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저밖에 할 사람이 없겠죠. 그것은 이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만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단장님, 릴의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들은 모두... 프리지아의 표정에 어둠이 깃든다. 루베오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다 말을 잇는다. 저주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죠, 소멸하기도 전에. 루베오의 말이 퍽 담담했다. 프리지아는 그것에 또 속이 답답했다. 또 그 사람처럼 잊혀질 심산인가? 그렇다면 두 개의 상실을 짊어져야 하는 건가? 프리지아는 그것을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둘은 가장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둘도 없는 친구였다. 어느 누가 친우의 죽음에 담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싫다고 해도 일은 늘 다가온다. 그러니 그 전에, 무너지지 않게 단단해져야만 했다. 루베오. 늘 단장님이라고 부르던 프리지아의 표정이 퍽 진지했다. 네가 그분처럼 잊혀진다면, 이번에는 내가 널 기억할게. 네가 그분의 이름을 기억했던 것처럼. 그 목소리가 어느덧 새벽의 분홍 햇살 아래 퍼진다. 꽃망울 같은 색을 뿜어내는 머리칼은 어느덧 결의를 머금고 빛난다. 루베오는 그것을 보고는 형식적인 미소가 아닌 정말 기쁘다는 듯 웃었다. 그래, 이번에는 네가 날 기억해 줘. 또, 그다음에 너를 기억할 사람도 있을 거야. 우리는 타인의 기억에 깃든다.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눕는다. 그들은 흙을 덮어주고, 영원히 기억한다.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진실은 기억보다도 더 쉽게 잊히지만, 그렇게 변화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잠들지 못하는 밤을 함께 보낸다.
 
"단장의 자리를 잘 부탁해, 프리지아."
 
"걱정 마, 내가 누군데. 너 다음으로 강한 사람이잖아, 나."
 
언젠가 우리의 영혼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 다시 만나자. 약속이야. 친구로서 이별의 말을 나누고는 기사로서 인사한다.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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