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영혼의 꽃내음.

by @Zena__aneZ 2024. 2. 29.

장작이 타는 소리에 기대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잠시 시선을 굴린다. 머릿속에 무언가 느껴지는 감각도 슬슬 익숙해지나 싶었다. 그저 가만히 장작을 보다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린다. 잠이 잘 안 오는 밤이지? 그 목소리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밤하늘이 유난히 높게 느껴졌다. 밤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땅에 쏟아질 듯했다. 내일 또 하루종일 움직이려면 잠에 들어야 하는데, 영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너는 그동안 네 얘기를 안했구나.”
 
그렇게 운을 뗀 셰도하트가 그를 바라본다. 나는 드로우인데?라는 대답을 내놓았으나, 그가 다른 드로우들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는 없었다. 그는 다른 드로우처럼 오만하지도 않았고, 함부로 깔보지도 않았으며 또한 낙천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문득 시선을 굴리다 방긋 웃음 짓는다. 뭐가 궁금한데?
 
“얼굴에 있는 화상흉터, 오래된 것 같은데.”
 
그의 얼굴에는 왼쪽 뺨부터 오른쪽 눈 위쪽까지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있었다. 흉터가 있는 곳에는 드래곤의 비늘도 상대적으로 덜 자라나 있었다. 그는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할지 고민했다. 장작 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질문을 던진 게일과 다른 동료들은 참을성 좋게 기다려주었고, 그는 목 뒤쪽을 손으로 쓸었다.
 
“드로우들이 어떤 종족인지는 알지? 그거 완전 개새*들이야.”
 
“그걸 드로우 입을 통해 들으니 신선한데.”
 
“역시 그렇지? 하하...”
 
나는 다른 드로우들이랑은 다르잖아? 이런 비늘도 그렇고. 다르다는 건 배척당하거든. 어느 사회에서든. 물론 티는 안 났지만! 유쾌한 어조로 말을 잇는 것과는 달리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보다는 단어를 고르는 것에 가까웠다. 잠시 숨을 뱉어내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어렸을 때 말이지, 10살 조금 넘었을 때였나? 마을에 노예가 좀 있었어.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녀석들이었지. 나는 그 녀석들이 조금 불쌍했던 것 같아. 그래서 이것저것 챙겨줬거든. 근데 어느 날 노예들이 머무르고 있던 곳에 불이 난 거야. 난 밖이었고, 걔네들은 집 안에 있었어. 아무도 구하지 않았어. 나는 그때 어렸지만, 아무리 어려도 선악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 그건... 비정상이었지. 그래서 나 혼자 들어갔어. 그 불구덩이 속으로.
 
“화상흉터는 그때 생긴 거야?”
 
“맞아, 그때 생긴 거야. 어때, 영광의 상처처럼 보여?”
 
그는 가볍게 웃었다. 모두가 비정상인 곳에서 혼자만 정상인 기분은 어떨까?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당시에는 꽤 힘들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든 무표정을 하고 있거나 느긋한 웃음을 짓던 그의 표정이 찡그려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비정상인 사회 속에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스스로를 가장 먼 곳으로 내던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다짐했어. 어딘가 먼 곳으로.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곳으로. 그 누구도 허무하게 죽지 않는 곳으로. 하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어디에나 이유없는 죽음과, 폭력과, 그리고 차별이 있었다. 그는 기꺼이 약자를 위해 무기를 들었고, 그리하여 자유로우면서도 강인한 존재가 되었다,
그의 이름인 라일락 향기가 바람을 타고 넘실거릴 때면 누구도 모르게 찾아와 어느덧손을 내밀어주었다. 드로우라는 종족이었기에 오해도 많이 사고 경계도 많이 당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로부터 온, 무언가에 얽메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을 살아갈 뿐. 혹자는 그를 자유로운 바람, 꽃내음 풍기는 영혼의 소유자라고 불렀다. 

'자캐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빛의 수호자.  (0) 2024.03.04
땅거미 질 무렵에.  (0) 2024.03.02
별빛 머금은 왈츠  (0) 2024.02.26
겨울꽃 흐드러지는.  (0) 2024.02.26
첫 번째 꿈.  (0) 2024.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