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린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본다. 이 지역에는 늘 눈이 쌓여 있었다. 제법 매서운 추위가 가득했지만 플레린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었거니와 이런저런 마법을 잘 쓰는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였으니 추울 일이 없었다. 손에서 피어오르는 빛무리가 주변을 밝힌다. 옆에 서있던 스타는 플레린을 가만히 바라보다 겉옷 하나를 꺼내 어깨에 둘러준다. 저 안 추운데! 하는듯한 눈빛을 보냈지만 보는 제가 다 춥다며 웃으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플레린은 그런 말에 실없이 웃곤 눈빛을 거둔 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에 마물이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잘못된 정보일까요? 플레린은 주변을 유심히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고요하기만 했다. 이상하다. 마물이 있다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 스타는 천천히 걸으며 거쳐온 길들을 생각해본다.
"오는 길도 지나치게 깔끔하긴 했는데."
"주변에 감지되는 것이 없어 땅 밑까지 범위를 넓혀봤는데, 조용해요."
플레린은 왼발을 가볍게 구른다. 바닥 깊숙하게 퍼져 나가던 물줄기같은 마나가 몸속으로 흡수되어 고요하게 사그라든다. 이번 일은 완전 허탕이네, 그러게요. 그런 대화를 나눈다. 이 주변에는 작은 마을조차 없었다. 마법을 잘 쓸 수 있는 이가 아니고서야 버틸 수 없는 추위가 가득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테다. 그래도 모처럼 멀리 나왔는데, 산책이라도 할래요? 그동안은 바빴잖아요. 일 허탕 친 기념으로!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어 웃던 플레린은 먼저 저만치 앞으로 나갔다. 넘어져서 다치면 업고 갈 거라는 스타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푸스스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 지독한 추위와 험준한 산의 경사를 조금만 견딘다면 이곳은 제법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추위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이제는 거의 볼 수 없는 꽃들이 가득했다. 겨울꽃은 강렬한 향기를 가지진 않지만 은은한 향을 가진다. 플레린은 손을 뻗어 가만히 꽃들을 어루만진다. 그리 길지 않은 은색의 머리칼이 뺨을 간지럽힌다. 스타는 익숙하게 곁으로 와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꽃, 가져가서 키우고 싶은데. 따뜻한 곳에 있으면 금방 시들겠죠? 아쉽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는 고운 목소리에 스타는 잠시 고개를 기울인다.
"가져가서 키울 환경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아?"
"충분히 할 수 있긴 하지만... 어떤 꽃은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하얀 입김이 흩어진다. 주변에 떠다니던 새하얀 빛이 춤추듯 둘을 감싼다. 설산 한가운데였지만 빛무리가 일렁이는 곳만큼은 따뜻했다. 눈밭 위에 둘의 시선이 지나간다. 조금 더 걸을까요? 그런 플레린의 질문에 스타는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온통 겨울인 곳에서 겨울처럼 하얀 이들은 오래도록 걷는다. 이 시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오랜만에 여유를 가진 채 같이 걷는 길은 아름다웠고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