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꿈을 이룰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꿈을 꾸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희망 없이 살아가고, 누군가는 닿는 대로 살아간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그리메는 그런 세상에 환멸이 난 사람 중 하나였다. 바라던 것을 이루지도 못하는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도 꽃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메는 그런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꾸준하게.
갓 스물이 되고 나서는 뒷세계에 몸을 담갔다. 그리메가 소속된 기업에서는 다크 히어로라고 불릴법한 일을 했다. 불법적인 행위로 범죄자를 막는 것이 퍽 우습기도 했지만 그리메는 그런 일을 이어가는 자신의 삶을 최악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 번은 아주 나쁜 일을 겪기도 했지만 최악의 삶을 산 것도 아니었다. 최악도 아니었지만, 최고도 아니었다. 언제나 그저 그런 삶이었고, 언제나 흘러가고 주어지는 대로 살 뿐이었다. 이런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범죄자를 잡아 죽인다고 하면 그건 처단인가? 혹은 같은 범죄인가? 그리메는 지독한 피로감에 앉아 눈가만 꾹 누르다 의자에 눕듯이 기대앉아 천장을 바라본다. 조명이 깜빡거린다. 그 빛이 또 처량하게 느껴져 몸을 일으키고 바깥으로 나간다. 뒷골목의 밤은 서늘하다. 약간의 담배 냄새와 이름 모를 들풀의 향기, 그리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아까 잠시 비가 와서 그런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잘 들렸다. 선천적으로 청각이 뛰어났기에 보조 기구가 없다면 일상적인 소리도 소음으로 다가왔다. 그런 능력 덕분에 비밀스럽게 하는 일을 더 쉽게 수행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일을 하기에 딱 알맞았나. 그렇다면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는 왜 준 것인지.
어쩐지 술이 먹고 싶었다. 아니면 20살에 잠깐 입에 댔다가 다시는 가까이하지 않던 담배라도 그리워진 건가. 그리메는 뒷목을 벅벅 문지르다 걸음을 옮겼다. 새벽의 물기 머금은 바람이 골목길 사이로 흐른다. 이런 곳에도 바람이 불어오고 또 흩어져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다. 한참을 정처 없이 걷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사실 평생을 정처 없이 걸어온 게 아닐까. 정해둔 목적지가 있기도 했으나 도달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흩어져버려서.
"하-..."
숨을 크게 내쉰다. 새벽의 찬 바람은 기분을 씻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루지 못한 꿈 따위를 되새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피우지도 못하고 시든 꽃은 버려야 마땅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이름 붙이지 못하는 어딘가의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은 어떤 미련인지. 여명이 밝아올 때쯤 후드를 뒤집어쓰고 뒷골목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다. 밝아오는 햇살이 너무나도 뜨거워 알 수 없는 마음까지도 드러내게 해 태워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에.
피어나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이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