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위에는 마수가 득실거린다. 아무리 마수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해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약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세상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살려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과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피부를 저밀 듯 차갑다. 약한 사람의 손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던 이는 두 아이를 안아 들었다. 함께 가자. 춥지 않은 곳으로...
에들리는 제 쌍둥이 동생인 에밀리의 손을 잡고 오래전에 있던 일들을 떠올리며 설원 위를 걷는다. 에밀리도 같은 추억을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원의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고 쏟아지는 눈은 희게 빛난다. 그 빛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 사이에서 유독 하얗게 빛나는 줄기와도 같은 것이 스산하게 움직였다. 에들리는 반사적으로 에밀리의 손을 놓치지 않게 단단히 잡았다. 에밀리, 바로 뒤돌아서 가자. 그 말에 에밀리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둘은 조용한 발걸음으로 옮겨가려 했으나 하얀 줄기를 가진 것이 더 빨랐다. 식물형 마수가 거대한 몸집을 드러냈고, 그것만으로 기억 저편에 잠들어있던 두려움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끈적한 긴장감이 공기마저 가르고 날아든 무기에 뭉그러졌다. 파란 화살 같은 기운이 마수를 꿰뚫고 그대로 바닥에 박혔다. 신비롭게 날아든 창은 온통 푸르게 빛나며 마수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내고는 날아온 궤적 그대로 돌아간다. 그 푸른빛 창의 주인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둘의 앞에 섰다. 잿빛의 목도리가 찬 바람에 마음껏 나부낀다. 괜찮으세요?!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둘은 속절없는 안도감과 함께 어떠한 신비로운 기분을 느낀다. 어쩌면 첫 구원을 만난 순간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나요?"
충동적인 질문이 바람을 타고 얕은 파동처럼 퍼져 류연에게 닿는다. 어린 날의 언젠가 자신이 했던 질문이었다. 류연은 둘의 손을 잡았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요! 여긴 위험해요.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그 얼굴을 전부 가렸다. 류연은 둘을 데리고 근처의 얕은 동굴로 들어갔다.
"두 분, 다친 곳은 없으세요?"
"아, 네... 늦었지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 아, 제 동생도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앗,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밝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다가도 아까 들었던 말에 대해 물어본다. 강해지는 방법.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언젠가의 류연이 가진 강렬한 마음이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끝없이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지만, 아주 역설적이게도 끝없이 약해질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류연은 밝은 웃음을 지었다.
"제가 알려드릴까요? 강해지는 방법이요. 전투에 대해서나- 다른 것에서도요."
"알려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보수는..."
"보수는 안 주셔도 돼요! 그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보수를 주고 싶으시면, 친구 하는 건 어때요? 그 이후로 설원의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다정한 듯한 말소리가 오간다. 각자의 추억과 다정함을 끌어안고. 설원의 한기가 햇살을 머금고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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