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이 세상에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그들과 같은 곳에 서있었으나 결코 같은 존재가 아니다. 존재의 차별은 흘러넘치는 애정이고 경외심이었다. 순 제멋대로인 감정들의 나열에 늘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그들과 같다 여겼으나 같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차별적인 것마저 사랑이라니, 너무나도 잔혹한 현실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가 필사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한 것은, 그는 그마저도 밀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작고 여리다. 쉽게 상처받고 그것보다 더 쉽게 죽어버린다. 찰나를 살아간다. 그렇기에 불꽃과 같았다. 하염없이 사라질 것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 불꽃에 매료된다면 그것으로 하여금 온몸이 사랑에 짓눌려버려 죽게 된다. 죽고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태어나도, 끊임없이 사랑에 짓눌려 죽어 새로운 몸을 얻어 이 세상에 떨어져도 사랑한다. 사랑받는다. 생명 그 자체인 존재는 끊임없이 죽고 태어나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니, 그는 늘 사랑에 짓눌려 죽는 것이렸다.
"내가 원했던 건, 그저... 내 친우들과, 사랑하는 인간 아이들과 나란히 서서..."
그저 그런 것이었다. 이 무한한 생과 사에서 바란 것은 그것뿐이었다. 나란히 서서 다시 한번 더, 같이 웃는 것만을 바랐는데, 그게 기어이 욕심이라도 됐던 모양이다. 그는 제 처지에 절망했다. 절망한 만큼 웃었다.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와 함께 서서 웃던 그 순간을, 그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다 지나가버린 일이었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현실이었다. 어찌 사랑하는 이들과 보낸 시간을 그저 잊어버리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제 심장의 균열에 손을 올렸다. 이 균열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균열이 나의 종말이겠구나. 그의 옷이 그의 존재만큼 하얗게 빛바랜다. 온통 하얀색으로 빛나는 세상 속에서 하얗게 빛바랜 그의 모습이 퍽 잘 어울린다.
숨을 들이켠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운다. 그는 눈밭 한가운데까지 걸어간다. 수많은 걸음을 옮기며 생긴 상처를 따라 붉고 푸른 발자국이 남는다. 길게 늘어진 하얀 머리칼이 날카로운 바람에 마음껏 나부낀다. 손을 위로 뻗는다. 육신에 담긴 생명력이 북부를 물들였다. 바닥에서는 풀과 나무가 자란다. 눈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아주 오래전 읊어봤던 음악을 부른다. 누군가와 함께 걸음을 맞추며 추던 춤을 춰본다. 생명력이 넘실거리는 대지 위에서 하늘하늘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그는 이미 죽어 없어진 자들의 손을 다정히 잡는다. 입가에는 절망하며 짓는 미소가 아닌, 환희로 가득 찬 미소가 눈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사랑받는 것은 혹독한 저주였다. 하지만 그는 혹독한 저주를 끌어안을 만큼 다정한 이였다.
사람은 죽어 이데아에 도달한다고 했다. 그는 바랬다. 자신의 모든 것마저도 이데아에 도달했으면 좋겠다고. 사람과 함께 걷고 싶었던 이가 녹아내린다. 하염없이 녹아내려 사라진다. 그는 마지막에 이데아를 보았나. 영원히 알 수 없다.
그의 마음도, 애정도, 존재마저도 녹아내리는 눈처럼 빛바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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