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는 위험하다. 이 세상에서 적절한 지식을 얻은 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위험이라 함은 위험한 마물과 험한 지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는 분명 사람도 개입해 있었다. 사회구조나 시스템 따위, 혹은 전염병처럼 퍼져있는 사고방식이나 주술과 같은 것들. 북부의 그러한 위험요소 때문에 죽을 뻔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위험요소 덕분에 살아남았다. 목적조차 불분명한 주술의 대상자이자 시전자가 된 리이스는 운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살아남았다. 매 순간 육신에 에너지가 붙들리게 하는 주술을 왜 만든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사령술과 유사해 보이는 불완전한 주술이 대체 왜,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이란 말인가? 심장에 억눌려 넘실거리는 힘이 시시각각 위태롭게 번뜩이는 감각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눈이 쏟아진다. 북부에는 눈이 정말 많이 왔다. 멈추지 않는 설움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눈은 다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 아이야, 삿된 힘을 가지고 있구나."
설원의 바람이 한 곳에 휩싸이고, 그 사이에서는 북부인들이 흔히 신이라고 부르는 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고, 무서울 만큼 투명하고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신이라 불린 이였으나 신은 아닌 존재는 결코 웃지 않았다. 웃음을 말소당한 사람처럼. 지쳐버린 사람처럼. 그 누구보다도 신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지독하게도 인간다웠다.
"안녕하세요, 수호령님."
"나를 그리 부르는 인간 아이는 오랜만인데. 고서를 찾아보았어?"
리이스는 긍정의 대답을 내놓는다. 배움을 싫어하지 않는 아이구나. 그 말에도 역시 밝은 대답을 내어 놓았다. 피넥사라는 리이스와 같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아는 것이 힘이고, 힘이 있으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게 되니까.
피넥사라가 대부분의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무지가 죄인 것을 모르는 이들의 앞에 서고 싶지 않았고, 무지가 죄인 자들에 의해 피해받는 이들을 돕고 싶어서.
"그런 삿된 주술은 어디에서 얻었니."
"... 음, 받으면 안 됐을지도 모를 일을 받아버려서요."
짧은 고민 끝에 올 말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한 그대로였다. 북부에는 모르는 시스템이 많고, 그것을 전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만 저런 주술에 당한 이들이 더 생기면 안 된다 생각했기에 피해자들을 열심히 도와 문제를 해결했다.
"주술을 조정하는 것을 도와줄게. 북부 아이들의 잘못이니 수호령인 내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니."
어떤 주술인지 아시나요? 밝음 깃든 목소리로 말하는 이를 바라보던 피넥사라는 긍정의 대답을 내어 놓았다. 땅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주술이지만,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실패한 줄로만 알았던 주술이 누군가의 실수로 성공했다는 게 우습네... 흘러가듯 말을 중얼거리다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눈을 감아. 네 정신에 집중해.
리이스는 피넥사라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그 손이 참, 차갑다고 생각했다. 생명과 불꽃을 다루는 존재였으나 그 육신이 지독하게 차갑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머지않아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주 잡은 손을 타고 따뜻한 것이 퍼진다. 혈관과 신경을 타고 들끓어 오르는 것이 퍼져나간다. 순수한 생명은 불길이다. 펄펄 끓는 물과 불길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아찔한 고양감에 휩쓸리지 않게 정신을 다잡노라면, 육신을 감싸던 불온하고도 기이한 떨림 대신 순수한 생명력이 차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술은 네 일부가 되어서 전부 떼어놓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훨씬 나아졌어요. 전보다 건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리이스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편다. 주술을 받아들인 이후로는 몸에 금이 간 것만 같았는데, 금 간 것이 말끔하게 메꿔진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주술을 느끼며, 아까 휩쓸렸던 기분을 되새긴다. 아득한 생명력과 끔찍할 정도로 강렬했던 고양감. 아마 상처 없는 누군가가 그 힘을 맛보았다면...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었으리라... 그러다 문득 머리에 손이 닿았다.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로지 한기만 품고 있는 존재처럼 보였는데 그때만큼은 더없이 따뜻했다.
"살아남은 네가 자랑스럽단다, 인간 아이야."
리이스는 고개를 제대로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으나, 그 자리에는 미약한 풀내음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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