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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된 요소 : 아동학대 관련 묘사, 폭력
모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도, 또는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이들도 모두 필사적이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눈부시도록 빛나는 삶을 마음대로 낭비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알 수 없다, 알 수 없었다. 그 무엇 하나 알 수 없음에도 살아내는 것이 아주 우습고, 또 우스워서... 이 삶은 온통 지옥이다. 모든 살아가는 것들이 필사적으로 살아내야만 하는 저주에 걸린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엘은 그것이 싫었다. 애초에 엘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가 옆에서 그런 것들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백지장인 채로 살아가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저 백지장인 채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이것의 어디에 엘의 잘못이 있을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홀로 남은 엘은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고함소리와 폭력도 없었다. 아프지도 않았고, 마음 깊은 곳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쁜 감각도 없었다. 그 대신 바닥에 흥건한 피와 더 이상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어떤 덩어리만 있을 뿐이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에 피가 번진다. 희게 빛바랜 머리칼과 그것보다 더 하얗게 빛나는 눈은 소름 끼치도록 투명하고 섬뜩하게 빛난다.
"... 어린애?"
"세상에, 이게... 아가, 괜찮니?"
엘은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괜찮다'니? 이것에 안 괜찮을 게 무어가 있다고. 이런 상황은, 최소한 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온몸에 멍이나 상처 따위를 달고 있는 것. 자유롭게 나갈 수 없도록 방에 잠금장치가 있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 속에서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엘은 자신에게 뻗어오는 손에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고, 그것을 본 다른 사람은 하얀 담요를 가져와 엘을 감싸고 안아 들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말로 설명할 줄은 몰랐지만, 분명 느낀 것은 포근하다는 감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엘의 부모는 진작에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나쁜 이들에게 넘어가서 착취당했다고. 정신계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돈이 됐으니까. 엘을 데려간 두 사람은 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옳은 것, 옳지 않은 것, 맞거나 틀린 것, 차별이나 편견에 대해서. 또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는 없었으나 이해할 수는 있었다. 천재였으니까.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어느덧 엘은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싫었던 것이 지금은 싫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살아내는 삶에는 괴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엘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엘, 이번에 처음 작전 나가는 건데... 괜찮겠어?"
"괜찮아요. 충분히 연습했고... 제 힘이 아니면 성립될 수도 없는 작전이잖아요."
엘은 그 말을 하고는 방긋 웃었다. 하얀 천을 써 얼굴과 머리칼을 모두 가리고 하얀 장갑까지 꼈다. 다녀올게요, 그 말이 끝나고는 엘은 바깥으로 향했다. 과거 자신을 구해준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혹은 과거의 자신과 같은 아이가 있으면 구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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