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은 가족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애틋한 것도 뭣도 아니었다. 붙잡아놓을 명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은 너무나도 답답했고, 안정감이라곤 하나도 얻을 수 없었다. 지옥이다.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리고 어디가 지옥이란 말인가?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던져두고,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마음속에 하염없이 담아둔 말들이 녹슨 칼날이 되어 속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사실은 사랑받고 싶었는데, 인정받고 싶었는데. 그 말 하나를 꺼내두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집안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기회는 멀지 않을 때 찾아왔다. 열다섯 남짓 되는 라일락의 재능을 알아본 한 사람이 후원인으로 나선 것이다. 라일락은 그것이 기뻤다.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찾은 것만 같아서. 라일락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 챙길 것은 거의 없었다. 책 몇 권과 옷 몇 벌, 그리고 예전부터 쓰던 펜 두어 개 정도. 쓰다가 버린 것만 같은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서 조용히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어린 동생이 말을 걸어왔다. 언니, 가? 그 말은 마치 그가 언젠가 떠날 것을 예상한 것만 같은 말이었다. 그는 가만히 뒤를 돌아 자세를 낮추어 동생과 눈을 맞췄다. 자신과 똑 닮은, 하지만 자신보다도 더 아름답고 똑똑한... 사랑스러운 동생. 단언컨대, 라일락이 동생을 질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안쓰럽게 여겼다. 이 아이는 나보다도 더 빨리 체념하겠구나 싶어서. 가만히 손을 뻗어 머리칼을 느릿하게 쓰다듬어주었다.
"헬렌, 너도 이곳을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거야. 똑똑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언젠가... 언젠가 너도 나를 이해하겠지."
하지만 한편으로 바랬다. 이해하지 못하기를. 잔뜩 사랑받고 자라기를. 그리고 모두를 버리고 가는 나를 용서하지 않기를. 헬렌은 그 눈빛에서 익숙하게 생각을 읽어내곤 입을 꾹 닫을 뿐이었고, 라일락은 몸을 일으켜 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 이후로 후원인의 집에서 지내며 많은 일을 했다.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고, 20살도 되기 전에 마법의 수식을 완성했다. 그것으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텅 비어버린 마음 한구석이 가득 차오른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인정받았다. 그때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것이 가득 찬 이곳에서 한 사람이 눈에 밟혔다. 어릴 때 두고 나온 제 동생. 자신의 상황이 나아지니 다른 이가 눈에 밟혔던 것은 이기심 같기도 했고,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한때처럼 괴롭지 않은 것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라일락은 20살이 되던 해 후원인의 집에서 나와 홀로 살기 시작했다. 혼자는 익숙했다. 아마 제 동생도 그러겠지. 그래서 익명의 후원인을 자처했다. 최소한 물질적인 것이 부족하지 않기를 바랐다. 필요한 물건과 돈을 보내주면서 무사히 지내기를 바랐다. 다만 기억 속의 어린 동생은 너무나도 빨리 커 멋진 어른이 되었으니, 라일락은 계속 뒤편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보다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야. 그러니 부디 용서도 하지 마. 그렇게 나지막하게 흘러가듯 말했다. 가느다란 말은 바람에 전부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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