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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전뇌의 세계.

by @Zena__aneZ 2024. 7. 31.

기계와 데이터로 이루어진 것에는 죽음이 없다. 굳이 지우거나 변경하지 않는 한, 혹은 완전한 파괴가 있지 않는 한 영원하다. 그것은 스스로 변질될 일도 없었고, 지워질 일도 없었다. 영원한 것인 셈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희망보다 절망이 더 가까운 세계에서 데이터가 가지는 의미는 거대했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불멸을 꿈꿨고,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을 꿈꿨다. 실제로도 많은 것이 나아졌다.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결손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됐다. 망가지게 된다면 교체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기억이라는 것은 따로 데이터화시키면 변질될 걱정 없이 영원히 보존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거기에서 생겼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꾸게 된다면 그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혹은 망가진 정신은 고칠 수 있는가. 그런 윤리의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온전한 전뇌의 세계에서는 '죽음'이라는 개념보다도 '인간다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소피엔은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말을 신중히 고르는 듯한 행동에 상대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소피엔이 기술자의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격'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의 정신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그 기원이 인간이어야만 인간답다고 할 수 있다면 인격이 형성된 기계는 인간답다고 할 수 없을까? 이제는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전신의체 보유자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그것에만 확실한 부정의 답변이 나온다면 다른 이들 모두를 인간으로 취급해야 하지 않을까? 기계와 데이터에게는 죽음이 없으나 사람의 영혼에는 죽음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가만히 손을 움직였다. 하얗고 푸른 창에 텍스트가 띄워지고, 음성이 함께 출력되었다.

 

[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그는 사람일 거예요. ]

 

안일하다면 안일한 대답이었지만 가장 소피엔다운 대답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는 방긋 웃음지었다. 우리 생각이 비슷해서 다행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의 끝에는 엷은 웃음소리가 흐른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영혼에 있었다. 사람은 결국 보이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인격이 형성된 기계에도 영혼이 있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신체를 바꾸고, 기억을 데이터화시켜 저장한대도 영혼은 끊임없이 닳는다. 가장 완전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영혼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기에. 그러니 데이터, 전뇌의 세계에도 죽음이 있다. 영원한 것도 없다. 그것에 슬퍼하지 말기를. 모든 삶은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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