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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돌아오는 대답은 잔인하고.

by @Zena__aneZ 2024. 8. 3.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꽃. 설화라는 이름의 뜻은 바로 그것이었다. 한때의 아름다움처럼 덧없는 것, 쉬이 녹아내리고 마는 것, 차갑기 그지없는 세상 속에서 피어나 사라져 버리는 것. 설화는 제 이름뿐만 아니라 이 세상 자체도 그리 덧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굳게 믿었던 것이나 믿음 없는 것, 부족함이나 풍족함,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세상은 분명 잔혹하였다. 언젠가부터 설화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열하길 반복했다. 그것은 주변의 시선도 있었으나 본질적으로는 자기혐오에 가까웠다. 나약해서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고, 심지어는 스스로 인식한 자신마저 온전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설화는 흐릿한 숨을 내쉰다.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왜, 그 질문이 입안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하지만 목소리를 통해 힘을 얻은 말은 결코 그런 하잘것없는 질문이 아니었다.

"... 비천, 네가 한 게 아니지?"

설화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믿음만큼은 검열하지 못했다. 그것은 설화의 아주 오랜 버릇이었다. 그것은 악습이기도 했으며... 간절함이기도 했다. 비천은 설화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설화는 그의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 있었다. 본질적인 두려움이다. 좋아하는 이가 다른 좋아하는 이를 싫어한다면, 그 질문에 늘 해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비천은 평소처럼 웃으며 설화의 손을 조심히 놓았다. 제가 한 게 맞습니다. 그 대답에 머리라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손에서 힘이 빠진다.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설화는 비천이 그런 짓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이건 무조건적인 믿음인가? 혹은, 다른 것일까? 지금까지 봐온 모든 것들이 전부 거짓일 리가 없었는데. 나는 네가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러니까, 이유를 말해줘. 끝내 내뱉지 못한 왜,라는 질문이 잘게 씹혀 뱉어진다. 무엇에 대한 질문인지 설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을 듣는 비천은 그 말의 본질을 너무나도 쉽게 파악했다.
 
"형님이 제게 다정했던 이유는, 제가 모자란 아우였기 때문입니다."
 
"비화가 너를 다정하게 여겼던 건..."
 
네가 가족이었기 때문이었어. 그 말이 목에 걸려 잘 나오지 않았다. 마치 토해내듯 말을 뱉어냈다. 뜨거운 응어리를 쏟아낸 기분이었다.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떨어졌다. 설화는 알 수 없었다. 왜? 왜 그 말이 이토록 속이 쓰라린 거지? 사실 가족이라고 모두 서로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설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던 일이었는데. 기분이 어떤 것으로 종잡을 수 없이 마구잡이로 흔들린다. 아니요. 아닙니다. 나는 누구보다 그를 잘 알아요. 그 말이 너무나도 잔인하게만 들렸다. 눈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쓸어내듯 닦아주었다. 숨을 쉬기가 어렵다.
 
"울지 마세요. 당신은 항상 웃는 게 잘 어울렸어."
 
눈물을 멈추려고 해도 계속 눈물이 떨어진다. 시야가 가물거리고 저릿거렸다. 설화는 이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비독을 발랐을 때의 반응이었다. 눈물을 닦아줄 때 바른 걸까, 그리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것은 극독으로 분류되는 것이었지만 설화에게는 그저 감각의 마비와 전신의 저릿함을 줄 뿐이었다. 가족이 직접 그녀에게 독을 먹인 덕분에 독에 대한 내성을 얻을 수 있었다. 비천의 대답이 돌아온 것만 같았다. 숨을 쉬는 게 영 버겁다. 몸이 허물어진다. 비천은 설화의 몸을 가볍게 안아 들어 걸음을 옮긴다. 설화는 가물거리는 시야로 비천을 올려다보았다. 네가 느껴온 비탄을, 조금 더 일찍, 정확하게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을 말로 직접 내뱉었는지, 혹은 생각으로만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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