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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슬픔은 바람과 함께.

by @Zena__aneZ 2024. 8. 8.

안갯속의 숲은 늘 고요했다. 어떠한 것도 없이 정체된 곳. 안개는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나 본질은 달랐다. 안개를 만들어낸 자는 안갯속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이 소중했고, 모두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휘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진다. 그것은 긴 시간동안 함께한 절망감이었고, 혹은 누군가의 죄악마저 짊어지고자 하는 이타심이었다. 광명이 가득한 세상은 부도덕함이 가득했으며, 암흑이 가득한 땅에는 슬픔이 넘실거린다. 누군가의 비탄이나 절망감처럼. 문득, 물기 섞인 바람이 뺨을 두드린다. 휘는 그 불온한 것을 알고 있었다. 걸음이 빨라진다. 체력이 닳을 일이 없었으나 숨이 빠르게 차는 기분이었다. 몸속에 무언가가 들이차는 느낌. 감정이 일렁거린다. 숲의 안개가 짙어지다가 옅어지고, 끊어질 듯 일렁거리다가... 곧 혼 하나를 기운 섞인 안개로 감싼다.

 

"... 휘."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휘를 바라보던 이는 흐릿하게 웃었다. 아,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언제인지... 울 수 없는 존재이건만 눈에서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명의 몸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일렁거린다. 바닥에는 찢어진 부적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다. 퇴마사가 다녀간 흔적.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여 안개를 늘 짙게 유지했건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혼이 오래 머무르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안개를 쉬이 거둬들이지 못하는 것은 필시 미련이라고. 명은 휘의 손을 꼭 잡았다. 온기도 뭣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것은 과거의 추억을 불러오기에 충분해서, 마치 잔향 같은 온기가 머무른다. 휘, 미안해. 또 놓고 가버려서. 이번에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흐릿한 미소와 함께 물기 가득한 목소리가 퍼진다. 휘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몸을 붙들고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휘가 바라는 것은 그저, 어린 자신을 지켜주었던 혼이 행복하길 바랐고, 잠시나마 함께 웃던 혼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저 그런 바람이었다. 그것이 과욕이었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해답을 찾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미안해, 휘.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

 

"... 이번만큼은 부디 평온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명 님."

 

가장 큰 사랑으로 살아낸 자의 혼이 사라진다. 그 자의 이름처럼 밝고 따뜻한 혼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언젠가 명이 했던 말이 있었다. 생은 바람이나 물과도 같다고. 그러니 영원히 머무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떠나가면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고, 돌아오면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또 흘러가다 보면 만날 수 있을까. 휘는 작은 바람을 가진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꼭, 먼저 다가가고 싶다고. 어린 시절에 명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안아주었던 것처럼.

시간은 붙잡을 새도 없이 흘러간다. 정말 쏜살같다는 말이 잘어울렸다. 영원할 것만 같은 감정 중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았다. 다만 흘러가는 모든 감정의 종착점은 항상 알 수 없는 그리움이라서, 영원하지 않은 것 중에서 그것만큼은 아주 오랜 친구처럼 곁에 머무른다. 휘는 안갯속을 걷다가 안개 안쪽의 마을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날따라 마을 초입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지난 평생을 누군가를 기다렸던 마음이 이토록 끈질기다.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문득 손에 야트막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은 손. 하지만, 익숙한... 휘는 뒤돌아보았다. 그가 그리워한, 어쩌면 진짜 가족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이의 색채가 흩날린다.

 

"휘,"

 

작은 아이의 얼굴에는 맑디맑은 미소 한 자락이 떠올랐다. 휘는 그 미소를 알고 있었다. 먼저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사랑으로 살아온 이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선뜻 손을 뻗었다. 마치 과거의 한 자락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것을 약속으로 여기고 먼저 찾아와 준 것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휘는 몸을 숙여 명의 몸을 감싸 안았다. 옅은 풀의 향기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풍기던 매캐한 약의 냄새도 없이, 그 어떤 상처도 없이... 그 사실이 기뻤다.

 

"언니,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 그 대답의 끝에는 또 웃음이 흐른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늘 존재하던 안개마저 바람에 흩어질 것만 같았다. 어떤 슬픔은 바람에 밀려 다가오고, 또한 바람에 밀려 흘러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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