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이야기는 다정함을 머금고.

by @Zena__aneZ 2024. 8. 9.

윤슬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다 짧은 한숨을 내쉰다. 이제 기껏해야 16살인 윤슬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은 그 나잇대의 학생들이 하는 고민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학교는 일찍이 자퇴했으나 모두 검정고시를 보고 합격해 학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지인이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있고,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쌓은 사람도 있었다. 일찍부터 프로그램을 만지는 것이나 무언가를 써내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소질도 있는 편이어서 이른 나이부터 게임 개발과 디자인 쪽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러니 누군가의 지원 없이도 충분히 돈을 벌어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은 늘 게임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더 매력적으로 보일지, 그리하여 이 게임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표정을 짓게 할 수 있는지. 윤슬은 하염없이 화면을 쳐다보다 얕은 한숨을 쉬곤 의자에 기대 폰을 들었다. 핸드폰에는 문자 두 개가 와있었다. 요즘 게임 개발을 준비한다고 했지, 잘 되어가고 있어? 무리하지 마. 윤슬은 그 문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맑게 웃어버렸다. 마치 고민을 꿰뚫어 보고 보낸 문자 같았다. 그 문자를 보낸 이와는 정말 우연히 친해진 것이었다. 우연히 만났고, 우연히 대화를 나누었고, 우연히 도움을 받고... 윤슬은 그 문자를 잠시 곱씹어보다가 핸드폰을 내려두었다. 이번에는 고양이 캐릭터를 넣어볼까. 주제는...

게임 개발을 이어가는 동안 많은 것을 생각했다. 우연이 만든 인연, 인연이 만든 이야기. 이번 게임은 윤슬의 이야기가 아주 은유적으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다정한 이야기들,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 우연과 필연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한 걸음 내딛는 이야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윤슬이었으나 윤슬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윤슬은 핸드폰을 들었다. 게임이 완성됐고, 다음 달에 게임 축제에서 발표할 일만 남았는데... 이번에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크게 영감을 받은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 게 말도 안 됐다. 사실 게임을 개발할 때 게임에 녹아들어 갈 만한 사람에게는 전부 이야기를 해두어서 허락도 구한 상태였다. 하지만 게임 축제 일정이 생각보다 촉박했고, 그것을 한참 준비하다가 연락이 늦는 바람에 올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 윤슬은 핸드폰 자판을 톡톡 두드린다.

[ 언니, 혹시... 다음 달 첫째 주 주말에 시간 있어요? ]
[ 제가 게임축제에서 게임을 하나 발표하는데... ]
[ 와줄 수 있나 싶어서요. ]

아그네스는 바쁜 사람이었다. 유능한 사람은 늘 바쁘다고 하지 않던가? 급히 일처리를 하다가 핸드폰 진동을 느끼곤 화면을 켰다. 최근에 정말 바빠 보였는데 드디어 게임 개발을 끝냈구나, 싶었다. 바로 캘린더를 켜 그날 있는 일정을 확인한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정만 있어서 다행인가, 그리 생각하곤 일정을 전부 취소하곤 긍정의 답변을 남긴다. 윤슬은 문자를 보고 방긋 웃곤 온라인 티켓을 몇 장 보낸다. 같이 올 사람이 있으면 같이 와도 좋다는 말도 함께. 아그네스는 슬며시 미소 짓는다. 윤슬의 표정이 눈앞에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줄리아를 데려갈까. 한 번 물어봐야겠네.

2주 동안 정말 정신없이 지낸 것 같았다. 행사장에 갈 때마다 너무 떨렸다. 실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또 어떨지 모르니까. 후, 짧게 숨을 내쉬곤 이것저것 준비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이전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막상 하면 잘하면서 시작하기 전에는 왜 그리 긴장이 되는지... 잠시 한산해졌을 때 한숨 돌리다가-

"와, 벌써부터 인기 폭발인걸."

"아, 언니...! 와줘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초대해 줘서 고맙지. 볼 게 많아서 즐겁기도 하고."

맑은 미소를 짓는 윤슬을 바라보던 아그네스도 같이 웃는다. 정말 기대 중인 건 따로 있지만 말이야. 가볍게 윙크하는 것을 보곤 밝게 웃는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만들어서, 기대하셔도 좋아요. 처음 만났을 때는 자존감도 자신감도 낮아 보였는데, 새삼스럽게도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슬은 발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넓은 관중석 앞에 서서 윤슬은 준비한 그대로 게임에 대해 설명했다. 이 게임에 무엇을 담고 싶었는지, 그리고 무엇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는지. 사회자의 재치 있는 멘트와 개발자인 윤슬의 매끄러운 발표 덕분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누군가를 닮은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 그것은 우연이고 인연이며 운명이라고. 잔뜩 긴장했지만 흐트러짐 하나 없이 깔끔하게 발표를 끝내고 조심히 내려오면 아그네스와 마주친다. 더없이 환히 웃어 보였다.

"어때요? 괜찮았어요?"

'자캐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넘어질 것만 같은.  (0) 2024.08.13
잊을 수 없는.  (0) 2024.08.12
자유를 위하여.  (0) 2024.08.08
슬픔은 바람과 함께.  (0) 2024.08.08
찬란한 비애.  (0)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