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이미 잔뜩 기울어져 있어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 말이다. 사실 이 세상은 그 어떠한 것도 공평하지 않았다. 불공평만이 유일한 공평함으로 작용한다. 누군가는 행운이라고 생각한 삶이 사실 감옥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허무감은 말로 다할 수도 없을 것이다. 플론은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가끔은 사는 것에 숨이 막혔다. 좋은 학생, 좋은 자식, 좋은 친구.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남는 것은 쉬웠지만 스텔라 플론, 그 자신으로 남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어둑한 방 안에서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누군가는 플론에게 행운아라고 했다. 힘듦 하나 겪지 않고 평온한 삶을 살게 됐다고. 누군가는 플론에게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했다. 정말 힘든 것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또 누군가는 플론을 다그친다. 중앙지역에서는 큰 고통 없이 살 수 있는데 그런 쓸모없는 생각은 왜 하냐고. 플론은 그 말들을 전부 듣고 가만히 생각했다. 그 말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지금 이 고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한 것처럼 행운아인 것이라면, 이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플론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차라리 울고 싶기도 했으나 버석하게 마른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헤집어버리곤 한숨을 내쉰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지친다. 그럼에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미련인지, 혹은 다른 것인지... 이렇게 키워지기만 하는 것이 사육장에서 아무런 의지도 없이 길러지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
플론은 고개를 들었다. 바깥은 여전히 어두웠고, 질문의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모두가 낙원이라고 부르는 곳이 플론에게만 낙원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마치 지옥처럼 느껴져서. 그러니 낙원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눈을 옷소매로 아플 때까지 벅벅 문지르곤 옷을 갈아입는다. 완벽하게 깨끗한 교복. 가방에 필요한 것을 집어넣다가 문득 손수건으로 잘 감싸놓은 것을 본다. 미묘한 눈빛을 하곤 그것까지 가방 안에 잘 밀어 넣고 집을 나선다. 아직 새벽이라고 부를 법한 시간에 혼자 걸음을 옮긴다. 학교 내에 있는 작은 동아리실로 걸음을 부지런히 옮긴다. 마법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새벽에 따로 모여 스터디를 하곤 한다. 가끔 선생님들이 와서 봐주기도 해서 마법 연습에 큰 도움이 된다. 플론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언제가 깊게 가라앉은 눈은 무언가를 직접 할 때만 찬란한 별빛으로 반짝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 중 한 명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일반적인 마법사보다도 실력이 더 좋은데 왜 그리 열심히 하냐고. 플론은 대답을 신중하게 골랐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좋아서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플론은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낙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안주하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플론에게 질문을 던졌던 선생님은 플론의 열망을 알아봤음에도 침묵했다. 진실을 말하지 않은 이를 위한 배려였고, 플론은 그저 그린듯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동아리실에서 마법을 연습하며 충분한 스터디를 진행한 이후 걸음을 옮긴다.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일찍 등교하는 것이 가끔은 힘들기도 했지만, 플론은 그 시간만큼은 정말 하고 싶은 만큼 움직일 수 있었다. 플론에게 그런 자유는 흔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성질은 남이 준 자유를 전혀 누리지 못하게 했다. 플론에게 의미 있는 것은 본인이 직접 성취해 낸 것이어야만 했다. 참 피곤하게 산다,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굳이 반박하진 않았다. 남이 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다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내는 방식이 있고, 플론은 아주 불운하게도 타인이 만든 완전한 낙원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물고기가 뭍에서 태어나고 만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언제나 넘어질 것만 같은 삶이 지나치게 위태롭다. 플론은 교실 문 앞에 서서 짧은 한숨을 내쉬곤, 그려낸 듯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는다. 본인은 의식하지도 못하고 하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웃음을 걸치고 친절한 인사를 나눈다. 모두가 봐오던 그 상냥한 모습은 사실 페르소나였으니, 그 삶은 지나치게 가혹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