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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로그 선물

상처투성이의.

by @Zena__aneZ 2024. 8. 11.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그저 주어진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하면서, 적을 철저히 압살할 뿐이다. 그것에는 이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약함인지, 다정함인지, 혹은 이기심인지. 혹은 전부 다인지... 알 수 없다. 앞으로도 평생 알 수 없을 성싶었다.

밤에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그리하여 밀려오는 슬픔은 잔혹하여. 달빛을 받아 어슴푸레 빛나는 암녹색 머리칼이 흘러가는 바람에 물결친다. 긴 머리칼을 넘기려는 행동조차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한 사람 앞에 자세를 낮추고 상대를 슬 바라본다. 온갖 상처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자는 군에서 보호하는 민간인이었다. 하지만 군에 있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사용하기 편리한... 수단. 다른 군인에 비해 약해 보였으나 결코 약하지 않았다. 특수군인 몇 상대하는 것은 일도 아닐 정도였다. 그는 속이 쓰렸다. 그저 여려 보이는 사람이, 쉽게 죽지 않고 잘 싸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림패처럼 쓰이는 것이. 그리고 그는 그런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명령을 따르는 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속이 쓰렸다. 덕분에 사망자가 생기지는 않았으나 차라리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부상을 달고 있는 자를 눈에 담는 것이 영 버거웠다.

 

"... 저, 약속 지켰어요."

 

출전하기 전 한 말이었다. 죽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고. 죽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냐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우습다고 생각했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괜찮은 걸까. 명목상 민간인인 자는 늘 죽기 직전의 부상을 입지만 죽지 못하고, 좋은 사람인 그는 그런 꼴이 될 것을 알면서도 명령을 내려야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말을 내뱉은 자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자는 검푸른 피를 흘린다. 슬픔처럼 주룩주룩 흐른다. 죽은 사람은 적밖에 없었다. 아군은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느낄 수 없었다. 이건 괜찮은 게 아니야. 전혀, 괜찮지 않아. 상처투성이의 손을 조심히 잡는다. 작은 손이었다. 무언가를 잡기에는 여린 손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군인인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람은 상처투성이의 손을 조심히 뻗는다. 어느 순간부터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것이 얼마만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 야트막한 눈물 자국에 죽어 사라진 가족이라도 생각난 것처럼. 온통 흐릿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정말 괜찮다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는 상대의 몸을 안아 들었다. 옷이 검푸른 피로 물들어간다. 아무리 색이 다르다 한들 피인 것은 같았다. 안아 들고 있는 사람이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정말 죽지는 않을 테지만 죽은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상한 것인가. 복귀한다는 짧은 무전을 남기고 걸음을 옮긴다. 안긴 이는 끔찍하게 아플 것이 분명하지만 아프다는 말을 결코 내뱉지 않는다. 감내하는 것이 익숙한 삶이었다. 그런 저를 걱정하여 잠깐씩 시선을 주는 것이 느껴진다.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다. 항상 감사해요. 야트막하게 내뱉은 말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은 그런 말을 들을 자격도 없었다고. 환하게 드는 달빛이 구름에 가려진다. 빛이 가려진 탓에 하고 싶었던 말은 깊은 밤의 어둠에 쓸려 나간다. 의미를 잃은 말들이 밤의 파도에 녹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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