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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로그 선물

일회성 만남 ^_^

by @Zena__aneZ 2024. 8. 30.

하늘은 지독하게도 파랗고, 그 사이에서 나부끼는 바람은 마치 갈 곳 잃어 떠도는 방랑자와 같았다. 꾹 눌러쓴 후드 사이로 흘러나온 보랏빛 밤의 장막이 걸쳐진 군청색의 머리카락은 길게 흔들거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꺼내든 쿼터스태프로 마물 하나를 길게 갈라내고는 시선을 옮긴다. 완연한 보랏빛의 눈이 파란 햇살에 흐릿하게 반짝거린다. 그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다가 상대를 빤히 바라보았다. 여기는 위험한데, 왜 또 나와있어? 보고 싶어서, 라는 장난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면 손을 꾹 잡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고 흰 두 눈이 선명한 보랏빛의 눈보다도 더 밝게 반짝였다. 걱정돼서 온 거냐는 물음에 당연하다며 긍정했다.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 조금은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사람이었으나 그냥 내버려두면 다칠 게 뻔했으니까. 음, 또 말려든 건가? 그런 생각도 했지만 굳이 입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다.

 

"너는 조심성이 없구나."

 

"그래야 지켜주잖아요. 손도 잡아주고."

 

손은 다른 사람도 잡아주는데. 길 잃는 사람이 많아서. 특별 취급이 아니었다는 말이에요? 조금 실망. 여전히 장난이 섞여든 목소리를 듣고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낙천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는 말수도 적은 편이었고, 먼저 말을 쉬이 건네는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원체 고요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건다면 그의 입장에선 꽤 편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옆에 있으면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낀다.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 그 사람과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 되는 기분. 마주잡은 손에 머무르는 온기를 떨쳐내지 않는 이유였다. 아, 있잖아요. 혹시 머리끈 없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뒤돌아본다. 아까 머리끈이 상했나 봐요. 이렇게 냅다 끊어져버려서. 끊긴 머리끈을 보여주면서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듣고는 참, 속도 좋다며 받아친다. 그리곤 손을 놓고는 뒷편으로 갔다. 제 옆머리를 묶고 있던 끈을 풀어 머리칼을 조심히 모은다.

 

"제가 할 수 있는데요!"

 

"얌전히 있어봐. 움직이면 머리카락 뽑힌다?"

 

혹시 멋대로 행동해서 삐졌냐는 말에 머리칼을 모아서 꽉 묶어버린다. 아야! 아픈 소리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는 잔머리까지 정리해주고는 머리끈에 가벼운 마법을 건다. 마물의 기운은 워낙 날카로워 다치기 십상이니까. 머리칼을 묶다가 귀걸이를 한 것을 보곤 그 모습과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반짝반짝한 검은색 눈을 닮은 게... 그리 생각하다 짧은 꽁지머리로 다 묶고는 손을 얌전히 내렸다. 저 머리카락 진짜 뽑힌 거 아니죠? 안 뽑혔어. 얼른 가자. 또 마물 나온다. 잠시 놓은 손을 다시 꼭 잡고는 걸음을 옮긴다. 새파란 하늘 아래에서 서늘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쬔다. 평화로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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