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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 로그

청소합시다!

by @Zena__aneZ 2024. 8. 21.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큰 한숨부터 쉰다. 단발을 약간 넘는 청록색의 짧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양동이와 대걸레를 든다. 그러고 보니 지사에 사람 하나가 온다고 했는데. 잠시 시선을 굴리다가 발자국 소리에 뒤돌아본다.

"아, 안녕하세요! A-6 지사에서 발령 나서 오게 됐습니다."

"안녕! 후배님이라고 불러도 돼? 내가 엔간해선 이름을 잘 안 불러서 말이지."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사람 좋은 미소를 본 이는 잠시 의문을 가진다.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게 편하지 않나?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렇다면 저는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어, 상관없어! 야, 너, 같은 거나 멸칭만 아니라면.

"그건 그렇고, 기계 사용 방법은 알아?

"아, 대부분 배우고 왔어요! 조금 미숙할 수는 있지만 열심히 할게요...!"

"좋네. 가르칠 것도 크게 없을 것 같고... 그럼 오늘 청소할 구역에 대해서도 알아둬야 할 게 있으니까 그것만 알려줄게. 따라와."

그는 익숙하게 걸음을 옮긴다. 청소해야 할 곳은 굉장히 어두웠다. 랜턴이 없으면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걷다가, 휘청, 몸이 급작스럽게 기울었다. 그가 허리를 잡아채지 않았더라면 분명 완전히 넘어졌을 테다. 바닥에선 소리가 들렸다. 큰 괴물의 입과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이 굉장히 혐오스럽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가까스로 입을 막았다. 역시 처음에 보면 놀라는 게 당연한 건가. 빛없는 흑색의 눈이 매끄럽게 굴러다니다가, 이내 허리를 잡고 있던 것을 조심히 놓아 상대를 내려놓고는 삽 하나를 들려준다.

"삽으로 모래를 퍼서 괴물 입을 메우면 돼. 절대 물건을 먹이지 말고, 들어가지도 말고. 몸이 산산조각 날 테니까."

자, 이제 청소하고 싶은 곳부터 하면 돼! 나는 동굴 쪽으로 갈 테니까 필요하면 오고. 그리 말하곤 양동이를 들고 휙 가버린다. 랜턴 없이도 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길 한번 잃지 않고 헛걸음하지도 않을 만큼 완전히 익숙해졌다는 뜻이겠지. 빨리 익숙해져야겠다 생각하곤 삽을 들고 일을 시작한다.
그는 물을 비운 양동이 하나에 탄피와 쓰레기를 담고 있었다. 정말... 많이도 썼네. 그리 생각하면서. 아직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를 보며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오염됐을지 모를, 혹은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를 과자를 뜯는 것은 엄청난 위험을 동반했으니 매뉴얼대로 전부 폐기할 뿐이었다. 어휴, 더러워. 한숨을 쉬다가 소각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선 다른 이가 폐기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고민하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그... 물인데, 여기에 다 버려도 되나요?"

"...? 너 무슨 21세기에서 왔니?"

이건 그냥 불이 아니야. 불처럼 생긴 폐기장치지. 제 손에 들린 양동이 하나를 소각로 안에 던져 넣고는 상대의 손에 들린 것도 뺏어서 던진다. 물이 엎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불은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졌다. 제가 있던 지사에서는 물은 따로 처리했어서요. 아, 맞다. A계열 지사는 소멸장치를 이용하지? C계열이랑 D계열 지사는 이 폐기장치가 기본이니 알아두면 좋아. B계열 지사는 우주폐기가 기본이고. 뭐... 일하러 가는 곳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선배님은... 여기서 몇 년간 일하셨어요?"

"A계열 지사에서 2년, B계열 지사에서 1년, 그리고... 아, 이건 비밀유지계약이 있어서 말하면 안 되고."

그리고 지금 D계열에서 5년째. 전체 기간은 15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 살지 못한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기어이 병을 얻어서 죽는 경우도 흔했다. 사고로 인한 사망률로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지사에서 계속 홀로 남아있는 것은 외롭지 않냐고, 그리 물어봤을 때는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걸로 외롭다면 버틸 수 없는 세상이다. 옆사람이 너무나도 쉽게 죽어나가는 이 세상은 희망이랄 것도 없다. 깊은 흑색의 눈이 곱게 휘어 웃음 짓는다. 외롭지 않다고. 설령 외롭다고 해도,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그러니 죽지 마. 아무리 내가 여기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도, 따뜻한 시체 치우긴 싫거든. 한없이 가볍기만 한 말투에선 감정이라고 할만한 것이 쉬이 느껴지지 않았다. 혹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그런 말에 고개를 주억이고 다시 청소를 하다 보면 어느덧 청소가 끝났다.

"수고했어."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아무도 안 죽었다는 사실에 내심 안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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