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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 로그

초혼

by @Zena__aneZ 2024. 8. 23.

招魂: 사람이 죽었을 때에, 그 혼을 소리쳐 부르는 일.




모든 물질적인 것은 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며, 모든 비물질적인 것은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한다. 두 세계는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의식은 무의식으로부터, 무의식은 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존재하기에 성립되고, 성립되기에 인식된다. 다만 사람의 뇌는 받아들이는 데에 명확한 한계가 있어 어느 세상도 완벽하게 알아챌 수 없다. 그렇게 알아챌 수 없는 것은 꿈이 된다. 아주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그리고 어느덧 눈치챈다면 그 꿈의 세계는 지척에 와 있다.
사람들은 꿈의 세계에 저도 모르게 들어오곤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꿈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며 금세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곤 하지만, 간혹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지 않고, 기억되지 못한 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운이 좋다면 그 세계에 존재하는 세상의 첫 번째 꿈, 드림코어를 만나게 되어 빠져나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현실의 육체는 죽고 영혼은 영원히 꿈속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혼은 아주 무르고 여려서 꿈속에 머무르다 보면 쉽게 변질되고 만다. 변질된 혼은 꿈의 일부가 되어 악몽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는 큰 혼란이 초래될 테다. 이 세상의 첫 번째 꿈은 그러한 혼란을 원하지 않았다.

"■■■."

불타는 보랏빛 황혼의 머리카락이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 현실감 없이 나부낀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또렷한 눈이 소름 끼치도록 투명하게 빛난다. ■■■, ■■■. 몇 차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변질된 혼 하나가 꿈의 곁으로 다가온다. 수고했어. 다정하고도 매정한 목소리가 울리자 혼은 곧 녹아내려 사라진다. 죽은 혼은 모든 것을 잊지만 이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 세상에 오면서 가장 처음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애틋하고 소중한 것. 증오스러울지도 모르나 그 혼의 깊은 곳에 새겨져 지울 수도 없는 것... 육신 잃은 혼을 불러낼 때는 늘 이름을 외쳤다. 의식과 무의식에 머무르던 생명들도 그 행위를 알아차린다. 혼을 부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되었고, 특별한 일에는 고유한 명칭이 붙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초혼招魂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시 이 자리에 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이 세상의 혼란을 원하지 않았던 꿈의 행위는 이윽고 추모의 형태가 되었다.
꿈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것은 결국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자가 많아지면, 기억되는 자도 많아진다. 죽은 사람을 품고 살아가는 것도 기억하는 것이었다. 추억은 의미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지지대였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길을 잃는 자는 자연히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의미 없이 길을 잃고 꿈속에서 죽어버리는 자들이 사라진다면 꿈 역시 미소 지을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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