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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 로그

도깨비의 하루.

by @Zena__aneZ 2024. 8. 24.

그는 사람을 좋아했다. 사람이 자주 쓰고 손을 오가던 물건에 혼이 깃들어 도깨비가 된 존재였기에, 그는 태생부터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는 늘 인적 드문 길을 오가며 사람들을 위협으로부터 지켜 주었고, 사람들은 그런 도깨비를 좋아했다.
잘 익은 벼이삭 빛깔의 긴 머리카락은 순풍에 흔들리고, 이따금 황금의 이채를 머금고 반짝거리는 연한 빛의 눈은 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느른한 미소는 언제나 여유가 가득했고, 그런 여유는 언제나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불러왔다.

"으앗! 무슨-"

"어이쿠, 미안! 위험한 게 있어서 말이야."

사람 하나를 달랑 들고 있다가 조심히 내려놓는다. 검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 스산하게 기어가다 도깨비가 피운 황금빛 불꽃에 휩싸여 사라진다. 조심해, 여긴 위험한 게 많으니까. 간단한 말을 남기고 훌쩍 뛰어 사라져 자취를 감춘다. 사고가 생기려 할 때마다 어느 순간 다가와 손을 내밀고 사라지는 도깨비는 좋은 평판을 얻는다. 다만 그런 자를 시기질투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  도깨비는 늘 어딘가에 숨어서 지냈다. 그림자 속에 녹아든 벼이삭의 향기가 무성해진다면 그가 곁에 있다는 뜻이었다.

"너는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살고 있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

그래서 이해를 못 하겠다는 거야. 이해해서, 이해를 못 하겠다고. 아리송하게 말을 이어가던 도깨비는 잠시 가라앉은 눈이 되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싫기도 했다.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슬픔을 안겨주는 사람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좋은 사람들에 의해 굴러간다. 결국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모든 것을 초월한 선의였다. 도깨비는 자신의 태생이 애정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 사용해 온 것을 아끼는, 귀히 여기는 것 따위의 마음 말이다. 난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좋아.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상대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쉰다. 애정으로 살아가는 선한 자는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인다. 신경 쓰는 자도 선하다는 반증이 된다. 그는 밝게 웃었다.

"넌 언젠가 배신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러겠지."

"그러겠지. 난 그런 마음에서 태어났으니까."

바보 같은 놈. 제법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으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웃는다. 너무 그렇게 말하진 마. 나도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한단 말이야. 부드럽고 가볍게 말을 이어가던 도깨비는 장난기 머금은 웃음을 짓는다. 단 한순간도 무거운 적 없었다는 것처럼 맑게 웃는 모습을 보곤, 상대는 다시 표정을 찌푸린다. 그런 모습이 또 재밌다고 느껴졌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 상대의 화를 더 돋우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을 얹지 않았다. 넌 네 선함에 발목이 붙잡힐 거야. 나도 알고 있어. 그런 대화의 끝자락에는 소금기 머금은 바람의 향기가 흐른다. 파도의 향기이기도, 눈물의 향기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가 봐. 가봐야겠네. 나중에 또 보자, 친구. 그 말을 남기고는 황금색 빛무리를 남기고 모습을 감춘다. 야트막한 온기를 바라보던 이도 걸음을 옮긴다. 바보 같은 친구야. 어찌 그리 좋은 사람이니.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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