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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 로그

칠흑빛 술사.

by @Zena__aneZ 2024. 8. 26.

어둠 짙푸른 밤에는 별의 빛무리가 휘날린다. 마치 칼날과 같이, 고요하게 찾아오는 선율과 같이. 한밤의 달빛을 등지고 있던 이는 천천히 걷다가, 이내 빠르게 뛰었다. 바닥에서 부풀어 오르는 붉은 기운을 보다가 제 몸집보다 큰 쿼터스태프로 바닥을 짚어 그대로 높이 뛰어오른다. 마치 장대를 쓰듯이. 공중에서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떠오른 몸은 높은 바위 위에 가볍게 안착했다. 마치 가벼운 날갯짓 같은 행동에 새카만 망토가 새의 날개처럼 보였다. 어둠 속에서 서슬 퍼렇게 빛나는 보랏빛 눈은 붉은 이채를 머금는다. 바닥을 기는 붉은 것은 마물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길게 뛰어오며 바닥에 새긴 선명한 군청색과 보라색의 주술진이 연달아 붉은 기운을 억눌렀다. 기어이 틈을 비집고 기어 나오는 마물은 술사의 쿼터스태프에 전부 짓이겨졌다.

"..."

꾹 눌러쓴 후드 사이로 군청색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 균열의 흔적을 눈에 담고 쿼터스태프에 검푸른 마나를 모으고 허공을 길게 긋는다. 그 사이로 튀어나온 술사의 사역마, 꼭 악마와 닮은 그것은 술사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균열을 모조리 메운다. 화살처럼 날아오는 저주를 유연한 몸짓으로 피하며, 순식간에 사역마와 동화되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고요하게 눈을 굴리던 이는 뒤도 완전히 돌아보지 않고 쿼터스태프를 뒤편으로 휘둘렀다. 무언가 크게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과 비슷한 소리가 났고,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저주의 힘에 끊겨 떨어졌다. 그런 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쿼터스태프를 쥐고 발걸음을 옮겼다. 추하게 넘어진 자의 앞에 몸을 숙이고 앉아서 바라본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보랏빛 눈이 악인을 향한다.

"이 균열을 만든 거, 너지?"

"알면서 물어보는-"

"마족은 어찌 됐든 즉결 처분이 안 되는데, 이런 경우라면 말이 달라지거든."

대답 똑바로 해야 할 거야. 쿼터스태프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쭈그려 앉은 채로 말한다. 서릿장처럼 찬 눈빛에 마족은 이를 갈았다. 분명 계획은 완벽했다. 공간의 균열을 만들어 마물을 꺼내와서 그것을 상품으로 내놓는다. 어찌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마물은 돈이 되었다. 특히나 돈 많고 썩은 귀족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마족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혼란을 야기할 목적으로, 혹은 부를 위하여 마물을 사고파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마족은 무어라 더 말하려고 입을 벙긋거렸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려 보인 오른눈에 갈라진 상흔이 보였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생명 중 저만큼의 저주를 입고도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괴물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술사는 그 반응을 보고 비웃는 듯한 소리를 흘렸다. 왜, 이 눈이 무서워? 괴물처럼 보여서? 다들 그러긴 하더라.
마족보다 더 마족 같은 존재. 술사는 이따금 악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것은 천한 출신인 것도 한몫하겠지.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길게 흘러내린 앞머리로 대충 눈을 가리곤 마족에게 제어장치를 걸고 익숙하게 끌고 간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성직자와 치안대가 인계받는다. 당신이 없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꾸벅 숙여 보이고 걸음을 옮긴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영 불편했다. 그것이 근본적인 불편함인지, 혹은 다른 무엇에서 비롯된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걸어와서는 아까 그랬던 것처럼 가볍게 뛰다가, 사역마에 다시 한번 동화되어 밤 속에 완전히 몸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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