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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빛 들지 않는 지하.

by @Zena__aneZ 2024. 9. 1.

세상의 가장 깊은 곳을 돌아다니는 탐험가는 햇살이 없는 것이 익숙했다. 오로지 등불 하나만 들고 지하를 탐험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었으나 높은 위험에는 높은 보상이 따랐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랄까. 탐험가는 가지고 있던 캔 하나를 따서 식사를 즐겼다. 식량도 거의 다 떨어져 가니 슬슬 돌아가야만 했다. 세상으로 돌아가면 또 여러 이야기가 따라붙겠지. 이번에도 돌아왔다느니 하면서. 세상은 늘 가십거리를 원했기에 탐험가는 그것에 질려 오로지 가장 깊은 곳만을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누리는 평화는 외롭기도 했지만 평화롭기도 했다. 평화와 외로움은 비슷한 것이라. 온종일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큼은 지독하게도 피곤했다. 애써 눈을 깜빡이다가 몸을 일으키곤 기지개를 쭉 켰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단, 돌아가자. 그리 생각하는 순간에 어디선가 반짝이는 것을 본다. 선명한 파란 불빛. 무언가에 홀린 듯 이끌어 손을 쭉 뻗어 파란 불빛이 나는 것을 어루만지자 눈이 멀 듯한 빛이 쏟아져 나온다. 찬란한 햇살을 닮은 빛에 표정을 왈칵 구기고 있다면- 어느 순간 모르는 곳이다. 버려진 이동 장치가 오작동이 나는 경우는 흔했다. 다만 이것은, 무언가 다르다. 그것을 확신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곳은 다른 공간이 맞는 것 같았다. 완전히 다른 시공간인지, 혹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이곳에는 원래 있던 곳에서는 어쩌다 한 번 볼까 말까 한 괴물이 넘쳐났고, 탐험가는 그것을 보고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지를 보고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을 탐험가는 없었다. 탐험가는 이것을 새로운 기회라고 여겼다. 새롭게 주어진 기회. 모르는 것에 대해 탐색하고, 알아가며, 두근거림을 마음껏 느낄 기회 말이다. 현실에 대한 염증도 그 어떤 것도 없이... 아주 온전한 것.

 

탐험가는 지하에서 빠르게 달린다. 지하의 괴수가 제게 무기를 찔러 넣으려 하면 절벽 앞에서 망설임 없이 뛴다. 기이한 소리와 함께 새카만 불꽃같은 형상이 그를 감싸고, 순식간에 신체의 형태가 사라졌다가 반대편의 땅에 불꽃의 형상과 함께 다시 나타난다. 부드럽게 발을 디디며 착지한 직후 머스킷을 들고 괴수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격발한다. 높이 올려 묶은 올리브색의 긴 머리칼이 옅게 흩날린다. 주황빛 눈이 등불의 빛을 받아 다채롭게 빛난다.

 

"멘디, 괜찮아?"

 

"아, 응. 괜찮아. 걱정 마."

 

파란 홀로그램이 반짝이고 누군가의 모습이 보임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걱정의 목소리. 괜찮다는 말로 화답하고 나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으나 대화가 통하는 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외로워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지. 가벼운 웃음을 흘리다가 거처로 돌아간다.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집으로 생각하는 곳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거처에 도착하자마자 챙겨온 물건들을 와르르 쏟아낸다. 다른 이는 그것을 보며 놀라움을 표한다. 이곳에서 이렇게 잘 적응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 만다. 원래 세계에서 적응을 그렇게나 하지 못하던 것이 다 이것을 위해서였나. 그런 황당한 생각도 하다가 혼자 웃고 마는 것이다. 무척이나 평화롭다. 언제든 크게 다칠 수 있는 지하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평화로워지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미지를 사랑하는 탐험가이기 때문이었고, 원래 있던 곳에서는 그 어디도 집으로 여기지 못한 까닭이었다. 다행이다. 이렇게나마 안온이 생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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