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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로그 선물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더라.

by @Zena__aneZ 2024. 9. 16.

바뀌지 않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이 차가운 눈밭이 혹독하게 춥다는 것, 이 혹한의 추위에서도 빛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결국 짓눌려 죽어 차갑게 변해가던 것은 지울 수 없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사실이다. 사실의 세계에서는, 그러니 이 차가운 눈 속에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아주 연약한 희망으로 연명해 가던 것이 부질없었고 속절없었으며 비참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굳세고 좋은 사람들은 강인해서. 바뀌지 않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애정 따위에 목이 멘다는 것, 기어이 사랑으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삶이...
입에서는 기침이 터져 나온다. 속이 쓰리다. 상처가 길게 늘어진다. 그가 걸어온 길처럼 길게도 늘어졌다. 그 흔적이, 상흔이 지나치게 피로했으면서 한편으로는 애틋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 의해 찢겨나간 생이 누군가에 의해 기워졌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값싼 염료로 물들인 삶이 타인의 손에 사정없이 찢겨 나간다. 찢어진 삶은 다시 타인의 손에 기워진다. 기워진 삶은 보잘것없고 비참했다.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처럼 비참하게 살아냈더라. 멀건 설원의 허연 눈물에 하염없이 녹아내린다. 희게 물들어가는 삶에서도 희망이라는 것은 찢기고 기워진 삶에 깊숙하게도 착색되었더라. 리오네트는 감각이 죽어가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었다. 밤의 장막을 닮은 머리카락도, 피를 담은 그릇처럼 붉은 눈도, 사막의 밤을 닮은 거뭇한 피부도 모든 것을 씻어내리는 설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독한 삶이다. 그럼에도, 다정한 삶이다. 매정하던 것은 영원히 매정했고 다정하던 것은 영원히 다정했으므로. 사실의 세계에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았으나, 인식의 세계에서는 꽃이 피어난다. 흰 눈꽃이 대지를 덮는다.
 
몸이 서서히 굳어간다. 여전히 혹독하게 추웠다. 손톱이 부러질 새라 생을 그러모으던 것이 종극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어떤 힘도 없이 누워만 있자니 옛적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추운 것이 좋았다. 손끝이 벌게지면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내밀어진 손을 망설임 없이 잡노라면 데일 듯한 온기가 저만치 번져간다. 사실은 추위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추울 때 마주 잡은 손이 좋았다. 자그마한 온기가 소중했다. 그런 온기로 살아낸 사람은 이제는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멀지 않은 과거의
한때는 추위가 끔찍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았다. 추억만큼 사람을 괴롭게 하면서도 살아내게 하는 것은 없었다. 채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 한 다발이 튀어나온다. 묻어둔 추억을 떠올리게 된 기쁨이었는지, 헛웃음이었는지, 소화시키지 못한 설움이었는지, 혹은 다른 것이었는지... 그 누구도 모를 터였다. 모른다는 것은 가끔 위안이 되었다.
 
사람 때문에 고통받았고 사람 때문에 살아가던 생이었다. 그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미련하고 상처투성이였다. 다만 미련하게 살아내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 그는 언제나 그 말을 부정했으나, 끝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이 알려준 사랑을 차마 잊을 수가 없었다. 후회는 없다. 그리하여 절망도 없다. 인식의 세계에 영원히 남아있을 당신네들은 모든 슬픔을 멀겋게 씻어낼 줄 알았다.
그는 남은 아이들을 걱정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하지 못한 것이 유일한 미련이고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분명 아이들은 그를 닮았으니 굳세게 살아낼 것임이 분명했다. 죽어가던 당신들도 꼭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터였다. 아마도 나는 당신들처럼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들이 알려준 대로, 살아온 대로 살아갔다.

미련하고 부질없던, 그랬기에 더 찬란했던 생이 느릿하게 하얘진다. 그는 평생 흰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이 설원은 모든 것을 희게 물들인다. 추억도, 절망도, 그리고 야트막한 기쁨이나 슬픔, 절망마저도 하얗게 만들고 만다. 리오네트는 폐부에 남아있던 숨을 모두 뱉어낸다. 잔혹하게도 추운 바람이 불어온다. 온몸이 얼어간다. 생의 끝마저도 춥다니, 참, 살아온 대로 죽는구나.
 
무거워지는 눈꺼풀 사이로 보인 하늘은 눈물이 날 정도로 푸르러서, 꼭 먼저 떠나간 당신들 생각이 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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