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대적인 선율은 거대한 황금 날개를 가지고 있다. 햇빛이나 달빛 따위를 받을 때마다 반짝이는 연하고 부드러 꽃잎처럼, 혹은 청아한 소리 울려 퍼지는 쪽빛 하늘처럼 부드럽게 빛난다. 절제의 미덕을 가진 신은 나비의 날개를, 혹은 천사의 날개를 닮은 것을 움직인다. 폭풍처럼 일렁이던 것이었으나 다정하고도 찬란한 신이 품고 있는 의지처럼 부드러운 바람이 되어 땅에 닿았다. 사람은 무르고 연약해 신을 그대로 마주하면 미치고 만다. 그러니 최대한 부드럽게, 절제하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깊고 깊은 애정을 충분히 무르게 해서 사람들에게 흩뿌리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절제하는 것이다. 넘치는 마음은 고통을 불러온다. 절제가 미덕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 무언가를 감내하는 것은 황금색 나비를 닮은 신을 닮은 상냥한 절제였다.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것만이 절제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한 마음, 그것을 위해 감내하는 것도 절제이니 모든 존재는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의 중간 지점에 머물렀다. 그것이 신의 안배였던가? 그것은 신만이 알 터였다.
소브리에타스, 리에라고 불리는 신은 다정하고 온화하다. 온갖 선율을 휘감은 신은 조절하고 제한한다. 그것은 부드러운 선율을 닮았다. 너울대는 쪽빛 하늘과 어슴푸레 찾아오는 흐린 보랏빛 밤을 꼭 닮은 긴 머리카락이 선율을 따라 나풀거린다. 선명한 등불의 색으로 빛나는 황색 눈 한가운데에는 선명한 금빛 나비모양 동공이 반짝거린다. 황금빛 사막을 떠올리게 하는 고운 피부색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마치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나비처럼, 모든 것을 조율하는 천사처럼.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노래와 같았다.
해답을 바라는 사람들은 절제의 미덕을 품은 신에게 기도한다. 신은 모든 기도에, 모든 마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절제함에 있다. 사람들은 몇 차례나 정제한 언어를 듣고,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다. 완벽한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존재가 그러지 않음은, 신은 분명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 해주는 마음보다 믿고 기다리며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원하는 곳에 닿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방관이라고 했으나,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했다. 사람을 강인하게 믿는 것. 같은 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유약함, 방관자, 음악가, 몽상가... 수많은 사람과 신이 그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찬미하고 비난하며 노래한다. 절제의 나비는 제게 쏟아지는 수많은 이야기에 침묵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다정한 자는 온화한 웃음을 걸치고 모두를 바라본다. 나서지 않고 뒤편에서 지켜본다. 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면, 기억하라. 절제의 선율은 언제나 뒤편에서 너울대며 흘러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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