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사실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상에 펴지는 역병, 더 이상 신도, 천사도, 악마도 아니게 된 괴물들이 세상을 시시각각 집어삼키려 했다. 다만 더 이상 신을 따르지 않게 된 타천사들은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역병에 대항했고, 일부 사람들은 타천사와 같은 선에 섰다. 다른 이들은 그들을 수호하는 자들이라 칭했다. 이 세상의 수호자들은 필사적으로 세상을 지켰고, 그 필사적인 마음은 또 다른 빛이 되었다.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깃들었다. 가끔, 아주 희박한 확률로 특별한 존재가 태어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별의 아이였다.
별의 아이들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잠을 자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필요 없었다. 이들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 같은 생명이나 이질감만을 불러오는 것. 처음에는 신성함이 함께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는 변질되어가기만 했다. 다르다는 것은 차별을 불러왔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반짝임이 차별의 씨앗이 되다니, 이토록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흰 천장을 올려다본다. 흰 천장에는 분홍색과 푸른색 무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주 잠깐동안 눈을 뜨고 있던 것이었지만 저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선명한 분홍빛 깃든 눈은 가지고 태어난 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욱신거린다.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으나 눈을 감는다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세상을 느낀다. 소리에서는 색이 느껴지고, 숨을 쉴 때는 사물의 형태가 느껴진다. 손에 무언가가 닿는다면 그것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별의 아이들은 특별하다.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알고 있다. 별의 아이들은 빛으로부터 지식을 얻는다. 배움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8살 아이의 머릿속에 수많은 지식이 쉼 없이 침투한다. 머리가 아프다. 어린 나이에 제물로 바쳐지며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수많은 목숨을 살리는 일은 고귀한 일이다. 두렵다. 구원하고 나서 버려지는 것이 두렵다.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다. 고귀한 일이라고 하지만 죽음이 어떻게 고귀한 일이 될 수 있을까? 한 생명의 끝이 어떻게 축복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아이는 빛을 피해 숨어버리고 싶었으나 방은 언제나 빛으로 가득하다. 그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눕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이는 도망치고 싶었다.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도망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그저, 도망치고 싶었어. 누군가가 구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이니 천사니 악마니,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저 평온을 바랐다. 아프지 않고 싶었다. 빛도, 다른 모든 것도 지긋지긋하다. 감고 있는 눈이 욱신거린다. 방 안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쉬이 들리지 않았지만 옅은 흐름이 느껴졌으나 그것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는 빛이 가득한 방 안에 혼자 있었다. 곧 제단에 올라갈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니면, 무언가 잘못된 걸까? 기어이 버려진 건가? 그런 생각이 엄습한다. 아이는 더듬더듬 벽을 짚어 잔뜩 웅크리던 몸을 일으켰다. 힘이라고 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문 위에 손을 얹는다. 굳게 잠겨 있었다. 작은 손으로 문을 몇 번 두드리다가 다시 몸을 웅크리고 눕는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분홍색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진다.
시간이 또 흐른다. 대체 며칠이 지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먹지 않거나 잠을 안 자도 죽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마치 저주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렸고, 속이 묘하게 울렁거렸다. 머지않아 어떤 흐름이 느껴진다. 매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같은... 아이는 어느 순간 자신이 있던 곳이 바스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물은 모두 남김없이 재가 되어 흩날렸고, 생명이란 하나도 없었다. 빛이 사그라들어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아이의 앞에 있던 어떠한 존재는 아이의 몸집보다도 큰 손으로 아이를 감쌌다. 아이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건 아주 오래도록 바라던 구원 같기도 했고, 처음 마주하는 다정함 같기도 했다. 그 누구도 이 행동에 대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감싸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다만 그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 존재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었다. 악마여도 괜찮았다. 지독하게도 잔인하던 사람들보다 포근하고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아가, 네 이름은 무엇이니?
"... 어, 없어요. 중요하지도 않고요..."
그렇다면 비셰로 하자. 내가 살던 곳에서, 네 머리카락 색을 닮은 꽃의 이름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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