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삶이다. 그 단어가 정확히 어떤 것을 표현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지금껏 들어온 수많은 말은 이 삶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했고,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눈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진다. 한쪽 눈을 파고든 마기, 저주가 한쪽 눈을 좀먹어간다. 이제는 피가 흐르지 않지만 무언가가 계속 흐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일까. 흐르고 있는데도 모르는 피일까.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손으로 닦아낸다. 그것의 색을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눕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며칠이 지나간다. 혹은 몇 주였나? 시간이 번잡스럽게 어지럽혀진다. 눈을 다친 날 이후로 시간에 대한 감각이 흐릿했다. 꿈에서 나오는 것 때문에 잠을 못 자기도 했고, 어쩔 때는 온종일 잠만 자는 감각이기도 했다. 아이는 또 제 앞에 떨어지는 무기를 잡는다. 지긋지긋하다. 누군가가 알려준 적 없었으나 그 마음은 분명했다. 이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지독하게 피곤했다.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익숙했으나 그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자유의지가 없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 아파."
아이는 느릿하게 말을 읊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알려준 말이었다. 끔찍한 고통을 겪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된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아이는 이게 어떤 감각인지 알고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진다. 아이는 엉망진창이 된 원형 경기장을 바라본다. 수많은 마물이 탈출해 아수라장이 된 곳에는 지독한 피냄새만이 진동했다. 그중 한 마물이 앞으로 다가왔고, 아이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본다.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아이가 사역하고 있는 정령이 아이의 몸에 들어와서 몸을 유연하게 움직인다. 사신의 낫처럼 생긴 것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다룬다. 만약 그곳에 다른 정령사, 혹은 소환사가 있었다면 그 모습을 보고 전율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는 멍한 눈으로 서있었다. 어차피 본인의 의지로 살아본 적 없는 삶이 사역하는 존재에 의해 강제로 움직인다고 해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몸은 여전히 부서질 듯 아팠고, 아이는 그저 죽어버린 마물을 바라본다. 살았네. 나 살았어. 그 말만을 망가진 것처럼 반복한다. 살았다.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모든 것을 체념했는데 살아버렸어. 아이의 곁에서 정령들이 속삭인다. 아가, 아가야. 문이 열렸어. 나가자. 살아야지. 살아남아야지. 아이는 못 박힌 듯 서있었다. 살아남으라는 말이 너무나도 피곤했다. 하지만 어차피 제 것이 아닌 삶이었고, 누군가에게 평생 조종당하는 삶이었다. 지금은 그 존재가 달라졌을 뿐이다. 아직 어린 존재는 제게 속삭이는 말이 다정함인지 매정함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남의 말대로 사는 것이 익숙해서. 아이는 가만히 열린 문을 바라보다가 문을 나섰다. 원형 경기장 안에서 맞는 햇살과는 완전히 달랐다. 조금 더 푸르고, 조금 더 시원하고, 답답하지 않은... 상처투성이 발에 닿는 수풀의 감각이 어색했다. 아이는 아까 마물을 죽였을 때처럼, 정령을 몸에 강신시켜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그 누구도 아이를 모르는 곳으로 향한다.
그 이후로 긴 시간이 지난다. 아이는 어느덧 청소년을 넘어 성인이 되었다. 그때보다 키도 컸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눈이다. 체념하고 포기한 듯한 눈빛과 눈 위에 깊게 새겨진 상처. 그것은 여전히 뜨거운 통증을 남겼으나 아프지 않은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그것이 아픈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이름조차 받지 못한 자는 그 모습과 눈빛대로 녹스(nox)라고 불렸다. 그는 그런 호칭을 싫어하지 않았다. 별 하나 뜨지 않은 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누구의, 어떤 사람의 친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는 용병이 되었다. 용병들끼리는 어떠한 상처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 그것이 편했다.
"녹스, 계속 정령 강신을 쓰면 상처가 더 심해질 거야."
눈 위에 새겨진 상처가 균열을 따라 기묘하게 꿈틀거린다. 자꾸만 피 따위가 마구잡이로 흘러나온다. 그는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곤 한쪽 눈 위에 천을 덧대고 붕대를 감아버린 뒤 후드를 뒤집어쓴다. 걱정스러운 말을 건넨 이는 짧게 한숨을 쉬곤 치료제 하나만 올려놓고 의료실을 나선다. 친절은 불편하다. 차라리 수단이 되거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편했다. 늘 그것만을 하며 살아온 삶에 다른 것이 들어올 여유 따위는 없었다. 붕대 아래 놓인, 검푸르게 변질된 눈에서는 여전히 끓는 것만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치료제를 챙기지도 않고 시설을 나선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언젠가는... 그는 후드를 더 깊게 눌러쓰고 아무도 모를 곳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