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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여명에 저무는 꽃.

by @Zena__aneZ 2024. 9. 15.

몸 위에 아름답고 부드러운 꽃이 무성하게 피어난다. 시력은 진즉에 다 잃어버리고 말아 꽃의 고운 빛깔을 눈에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감각이라고 할만한 것이 남아있었다면 끔찍한 고통이 동반되었을 것이니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은 야트막한 다행이 되었다. 죽어가면서도 무언가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기쁨인지 절망인지 분간할 길이 없었다. 밤에 피어나 여명에 저무는 꽃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몸을 평온하게 뉘었다. 고통도, 슬픔도, 후회나 미련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언제나 필사적으로 기쁨을 찾았고, 웃으면서 지냈다. 비탄보다 행복감이 더 많은 세상이었으니 분명 괜찮은 삶이었다. 그럼에도 일찍 숨이 다하고 마는 것은 슬픔이나 비탄에 가까웠으니... 눈가에 희고 푸른 꽃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꽃에 파묻혀 눈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는 등의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을 이어간다. 애초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을 눈에 희망이라도 담긴 것이 비정상이었나? 이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에 순응했으나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버텼다. 왜 필사적으로 버텼는가,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말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다워서. 살아내는 것은 기적이자 꿈결이라고. 그렇게 강인하게 버티던 꽃과 같은 사람은 드디어, 기어이...
핏기도, 체온도 흐릿한 육신 위에 흐린 태양빛으로 물들어가는 새벽 내음 속에서 시들어간다. 숨을 내쉴 때마다 생명이 한 움큼씩 사라지는 착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주 낯선 감각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익숙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익숙한 개념이었다.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자였기에 죽음의 그림자를 알았다. 죽음의 그림자를 알았기에 굳셈을 알았다.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양립하는 감정은 늘 서로를 정답게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기꺼웠다.

"─..."

목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만 난다. 생명이 모조리 흩어진다. 흩어져가는 생명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던 꽃이 화원을 만든다. 월하미인을 닮은 꽃이 수도 없이 많이 피어났다. 그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눈의 끝에는 하늘색 편지가 고이 접혀 놓여 있었다.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였다. 온통 흐릿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바로 했다. 편지에 쓴 말을 입모양으로 애써 읊어본다.
살아내는 것은 지옥과 다를 것이 없어요. 그럼에도 고통만이 있는 세상은 아니니, 희망은 나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아주 좋은 거죠. 그리고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고요. 저는 언젠가의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이 편지를 읽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젠가 다가올 슬퍼질 날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워질 날에 이 편지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안녕히. 나의 삶은 축복이었어요. 당신의 삶도 그러길 바랄게요.
꽃이 저문다. 월하미인에게 여명이 찾아왔다. 기어이 그를 집어삼키고 만들어진 죽음의 화원 속에서, 그는 덧없이 평온해 보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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