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옛적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서 눈앞에 서 있는 꼴이 심히 메스껍다. 무엇이, 어떻게 메스꺼운 줄도 모르고. 사실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슬픔의 한 종류였나?
꽃의 이름을 가진 자는 그에게 늘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을 불러오게 했다. 그리움이나 슬픔과 같은 선을 그리며 끝없이 추락하는 이 감정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몰랐다. 시커먼 하늘에 푸른 궤적을 그리며 떨어져 하염없는 공허함만을 불러오는 이것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적절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후각이 없음을 다행이라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고요의 화원을 만들어 그 속에서 스러진 자였다. 모든 감각이 울렁거릴 정도의 짙은 꽃향기로 가득했음이 분명하다. 절망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얼굴로 죽어버리다니, 아둔한 사람아. 남은 자들은 어찌하고 이렇게 웃느냐고...
"─ 채널."
그 사람의 목소리에 온갖 감정이 섞여든다. 그런 목소리를 듣는 자도 감정의 소용돌이에 젖어갔다. 이미 시들어버린 자의 목소리를 다시금 듣는 것이 굉장히 불쾌했다. 기분이 더럽다. 죽은 사람이 눈앞에 있다. 과거의 망령인지 환각인지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꽃을 닮은 그 사람에게는 그림자가 있으니 환각은 아니겠거니 싶었다. 왜 환각이 아닌가. 하지만 환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나? 그리 특별하거나 애틋하게 여겼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죽음에 슬퍼하는 것에 적절한 무게가 어디 있을까? 하하... 기분 더럽네. 중얼거리듯 흘러간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입이 쓰다는 기괴한 감상이 늘어진다. 심히 메스껍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떳떳하지 못한 지, 반쯤 내리깐 시선은 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끝까지 다정했던 사람은 또 슬펐던 것인지 짧은 침묵을 지켰다. 잿빛 은색의 머리카락과 고운 눈빛을 뒤덮은 천이 바람에 흔들린다. 곧이어 목소리가 흘렀다.
"내가 당신을 슬프게 만들었어요?"
올곧은 질문이다. 그 질문을 받은 자는 침묵을 지켰다. 다시 질문이 던져진다. 혹시 그리웠느냐고. 그 질문이 파형을 일으키며 뭉그러진다. 슬프지 않아. 그립지도 않아. 그러니 그 입 닫아. 진심으로 그랬다면, 날 보고 다시 말해봐요. 꽃을 닮은 자는 한 걸음 다가섰다. 망설임 없는 다가섬에 반 보 물러나버린다. 등 뒤로 자라난 수많은 전선들이 허공을 배회하다가 그 사람의 손을 잡는다. 조심스럽게, 억세게, 놓칠까 봐 두려운 것처럼. 강렬한 파도와 같은 감정에 그 여린 손을 억세게 붙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닮은 이는 마치 정답게 손을 잡는 것처럼 조심히 마주 잡는다. 몇 발자국 거리가 남지 않았을 때 몸을 숙인다. 기어이 시선이 맞물렸다. 참 올곧은 사람이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심히 메스꺼웠다. 삶은 전혀 축복이 아니고 다정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그림자를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불행 하나 모르는 사람처럼 있는 것이 불쾌했다. 떠난 자는 그저 떠나기만 했으면 됐지만 남은 사람은 계속 기다려야만 했다. 공정하지 않다. 공평하지도 않다. 죽음의 그림자에게 사랑받은 자는 일찍 죽어버렸으니 그는 어떻게 해도 그것을 사랑할 재간이 없었다.
"나는, 채널이 그리웠어요. 아주 많이요."
손목은 여전히 잡혀 있었다. 아플 법도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웃음 속에는 슬픔이 잔뜩 녹아들어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음성 출력 기관이 망가졌을 리가 없는데. 성대가 있지 않은데, 자꾸만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자꾸만 목이 뻑뻑해진다. 목이 별 기능을 하지 않음에도.
"그때 남긴 내 편지, 뜯어봤어요? 열심히 썼는데."
보지 않았어. 그저 오랜 죄책감처럼 품고만 있었다. 꽃을 닮은 이는 구슬프게도 웃었다. 그게 당신만의 추모이냐고. 대답할 길이 없었다. 어디 한 곳이 찢어질 정도로 슬픔으로 가득 차서 불쾌할 뿐이었다. 슬픈 줄도 모르고 슬픈 사람. 꽃을 닮은 이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진즉에 감각이 다 죽어버리고 만 입안에서 쓴맛이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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