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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나비 날개의 상인.

by @Zena__aneZ 2024. 9. 23.

처음, 그 자가 있는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기묘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맡는다는 말 대신 느낀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곳을 직접 방문한 자들은 모두 느낀다는 표현이 올바르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분명 향기롭고 조화로우나 이질적인 것은 어떠한 알 수 없는 기분을 불러온다. 길게 늘어진 찻잔과 수정구, 온갖 물건들, 제법 위험해 보이는 날붙이와 사탕과 같은 것들이 보인다. 제법 넓은 가게 안에는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넓은 공간 안은 물건으로 가득 차있었다.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곳이라니, 얼마나 형편 좋은 말인가?

 

"또 오셨네요, A."

 

"그래. 필요한 게 있어서."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랄 법도 했으나 이곳에 여러 번 방문해본 이는 놀라지 않는다. 처음에는 꽤 놀랐던 것 같았다. 나비수인과 정령의 혼혈은 그리 흔한 종족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이곳의 주인은 두 종족의 특성을 아주 강렬하게 이어받았다. 나비수인 특유의 기묘하면서도 황홀한 향기와 길게 늘어진 나비의 날개에는 정령의 빛깔이 깃들어 있었다. 짙은 웃음을 짓던 자는 새카만 눈을 느릿하게 굴린다. 이번에는 무엇을 사러 오셨나요? A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을 건넨다. 저번에 사간 그 약은 여전히 팔고 있나? 어머, 벌써 다 쓰셨나요? 그 말을 들은 자는 표정을 구겼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다. 등에 돋아난 나비 날개가 느릿하게 움직인다. 내성이라도 생긴 게 아니냐는 말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고개를 옅게 기울이는 행동에 따라 탁한 밀색 머리칼이 흔들린다.

당신, 혹시 악몽이 심해졌나요? 혹은, 악몽을 불러오는 존재가 있나요?

 

"...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 않는 게 좋을텐데."

 

"쓸데없는 간섭이라뇨. 잘못하다간 제 귀한 손님을 잃는 건데. 그 정도로 강한 수면제는 당신밖에 버티지 못해요."

 

조심해서 써요. 당신이 사용하는 것이든, 누군가에게 사용할 것이든. 어떤 방향으로든. 야살스럽게 웃던 이는 이윽고 흰 유리병을 하나 내밀었다. 무언가를 알고서 하는 말인지, 혹은 모른 척하고 하는 말인지... 멀끔하게 다듬어진, 꽤나 비싸게 거래되는 보석 두어 개를 검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트레이 위에 올려두었다. 겨우 수면제 하나에 이렇게 비싼 값을 지불한다니, 저 수면제의 사용처는... 안 봐도 뻔했지. A의 지독하게도 깊고 푸른 눈이 생기 없이 반짝인다. 그런 모습이 소름 끼쳤을지도 몰랐으나 비밀스러운 공간의 주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손만 흔들었다. 다음에도 또 찾아와요. 그때는 다른 상품도 보시고요. 내가 수면제 이외의 상품을 찾게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짧은 대화의 끝에는 문에 달린 작은 종소리가 흐드러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매정한 사람이라니까.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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