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감각이 뚜렷하다. 토할 것만 같다. 얼마나 뛴 건지 모르겠다. 다만 뒤에서는 계속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함소리. 비명소리. 장작 타는 소리. 프리지아는 아픈 숨을 내뱉는다.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져 보석이 되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억세게 붙들고 있던 짧은 날붙이에서 새빨간 빛이 일렁거린다. 프리지아는 뛰던 것을 멈춘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아이가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줄 알았으나, 정확히 그 반대였다. 프리지아는 날붙이를 위로 치켜든다. 모든 것을 태울 듯 강렬한 불기둥이 솟아올라 추격해오는 사람들을 휘말리게 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주입당했던 것은 프리지아의 안에서 새로운 힘을 끌어내었다. 먹은 것도 없건만 속이 울렁거렸다. 불기둥이 천천히 사라지고, 프리지아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죽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도망친 아이들은 모두 다 죽음을 피하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도망치는 이유는, 그저 살고 싶어서. 그게 유일무이한 이유였다.
햇살이 피부에 따갑게 닿는다. 붉게 충혈된 눈이 아팠다. 눈밑이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렸으니 발에 성한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날붙이를 눌러 잡던 손도 당연히 무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이나 뛰던 것은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까마득한 절벽이 보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공포가 엄습했다. 뒤편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언젠가 들은 말이 있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지만 프리지아는 낙원처럼 거창한 곳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저...
"도망칠 곳은 없으니 이쪽으로 와."
"거기서 떨어지면 죽기밖에 더 하겠냐? 죽는 건 싫지?"
기적적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너를 받아줄 사람은 없어. 너는 마녀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니까. 떨어져 죽고 싶지 않으면 이쪽으로 오라고. 역하다. 속이 메스껍다.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다. 프리지아는 어느덧 가까워진 사람들을 보다가 절벽 아래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누군가가 보인다. 프리지아는 그 사람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 아래 있던 사람이 손짓했다. 마치 괜찮다는 것처럼. 어차피 이제는 길이 없다. 프리지아는 날붙이를 버리고,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찔한 부유감이 온몸을 감싼다. 어떤 통증이나 무언가가 느껴질 줄 알았건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졌던 것은, 오로지 옅은 온기와... 굳게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다. 아까 절벽 아래에 있던 사람은 어느 순간 프리지아를 감싸 안고 공중에 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 아, "
프리지아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아주 어렸을 때, 딱 한 번 봤던 검은 바다가 생각났다. 누군가와 함께 봤는지는 전부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깊은 눈을 마주하는 순간 검푸른 바다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추억 따위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파랗고 검은, 붉은 보석이 눈에서 마구잡이로 떨어진다. 더 울라는 말도, 울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 하더라도 거기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언젠가부터 손에 있던 녹빛 검으로 모든 것을 갈라냈다. 부정을 갈랐고, 부정함을 품고 있는 사람을 압도한다. 신을 닮은, 하지만 분명 사람인 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정리한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고 망가진 순간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상처투성이의 몸을 잡아준 자의 체온은 따뜻했다. 상처투성이인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 엉망인 상황도 괜찮다고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두 인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마녀라고 불리지 않을 자격이 있다.
"가...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감사인사는 제가 해야 합니다."
저를 믿고 뛰어주어 고맙습니다. 용기를 내줘서 고마워요. 프리지아는 그 말을 듣고 울었다. 길게, 아주 길게 울었다. 그 사람은 눈물을 닦아주며 천천히 등을 도닥였다. 검푸른 망토가 길게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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