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엔은 손을 가볍게 움직인다. 부드러운 손짓에 조금은 어둑했던 천장에 간접 조명이 깜빡이며 밝아진다. 손끝에 푸른 네온빛이 반짝인다. 궁륭 천장으로 햇살이 들어와 밝아지는 것만 같은 내부에 네온빛은 어울리지 않았으나, 내부에 있는 이름 모를 기계들은 기묘한 부조화를 한층 누그러트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잠시 기기 몇 대를 체크한다. 늘 하는 과정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 그가 아무리 무언가를 고치고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특히나 어려운 것을 수리할 때에는 긴장감이 더 커졌다. 겨우 그것 때문에 실수할 일은 없었지만,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가벼운 체크를 마치고 자리를 옮긴다. 휠체어 바퀴가 맑은 조명을 받아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곱게 반짝인다. 미리 문을 열어둔 공방 안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 일찍 도착하셨네요. 지루하지는 않으셨나요? ]
"워낙 볼 것이 많아 지루할 틈도 없었네."
파란 네온이 손끝에서 반짝이다가 몇 차례 정돈되듯 깜빡거리며 정갈한 홀로그램 글자를 띄운다. 함께 출력되는 목소리는 여리고 곱다. 그의 겉모습과 꼭 잘 어울렸다. 너울대는 밤바다의 색채를 그대로 담아낸 모습은 특출 나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으나 시선을 잡아끌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그런 소피엔의 모습대로, 공방의 내부에는 소피엔이 가지고 있는 색과 닮은 기계와 무기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벽면에 붙어있는 모니터에는 기계의 분해도와 조립하는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만 보고 있어도 지루할 것은 없었다. 소피엔은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가 공방 안쪽 깊은 곳의 방으로 안내했다.
"여긴 걸을 때마다 병원을 가는 기분이 든단 말이지."
[ 그런가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
"나쁘다는 뜻은 아니야. 병원 같아서 안심이 된다는 뜻이었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병원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나. 장난스러운 말 끝에 수리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병원 침대 같은 시술대 위에 익숙하게 눕는다. 소피엔은 잠시 손을 한 번 쥐었다가 펴곤 작은 화면을 한 번 건드린 다음 굳게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자네는 긴장을 좀 줄일 필요가 있어.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 화면에 반짝이며 떠오른다. 센서 몇 개를 차단한 뒤 익숙하게 점검을 시작한다. 큰 문제는 보이지 않았지만, 가장 고장이 잘 나는 부위인 손은 역시나 약간의 고장이 있었다. 평소에 손을 많이 사용하냐는 질문에 많이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원체 바쁜 사람이었으니 '많이'의 기준이 조금 다르다고 해도 무리는 없어 보였다. 심각한 고장이 아니라 다행이었지. 고치기 어려운 수준도 아니었다. 몇 가지의 점검까지 다 끝마치고 차단한 센서를 연결한다.
"역시, 주기적으로 점검을 하니 훨씬 낫군."
[ 대표님은 다른 분들보다 훨씬 더 점검을 많이 받아야 해요. ]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영 나질 않아서 말이야."
나중에라도 점검이 필요하다 판단된다면 꼭, 반드시 오라는 말을 덧붙인다. 전신 의체 보유자들은 신경 써야 할 것이 굉장히 많았으나 그는 반드시 신경 써야 할 것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기 관리를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한 타인의 일에 반응하듯 행동했다. 정말 그것을 중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물어볼 필요는 없다. 감히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소피엔은 기술자로서 그들에게 문제점을 알릴 의무가 있었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반드시 들러주세요. ]
"하하, 내가 그렇게 믿음이 없는 줄은 몰랐는데."
[ 믿음의 문제보다는 제 직업윤리니까요. ]
소피엔은 어떤 작은 도구를 건넨다. 보통은 달콤한 간식이나 치료제를 주곤 했지만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의체 보유자들에게는 일회용 수리키트를 주었다. 어딘가 고장이 났을 때,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사실 소피엔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했지만, 용병으로 일하는 사람은 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니까.
급할 때 쓰세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니 쓰고 나서는 꼭 수리받으러 오시고요. 친절한 목소리의 끝에 작은 웃음이 흐른다. 지난번에 준 것도 잘 썼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쓴 건 아니야. 다른 의체 보유자에게 줬거든. 어쨌든, 고맙게 받지.
'자캐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의 괴물. (0) | 2024.10.01 |
---|---|
의체는 소모품. (0) | 2024.09.30 |
모순적인 평화. (0) | 2024.09.27 |
끝나지 않는 악몽. (0) | 2024.09.25 |
나비 날개의 상인. (0) | 202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