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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숲의 괴물.

by @Zena__aneZ 2024. 10. 1.

검다고 느껴질 법한 수풀이 우거진 그곳에는 괴물이 산다고 했다. 언제부터, 어떻게, 왜 시작되었을지 모를 소문은 그저 하염없이 떠돌기만 했다. 숲 안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것, 괴물이라고 불리는 존재는 느릿하게 눈을 감는다. 괴물이라고 하는 것은 비방과  같다. 다만 그러한 나약하고 힘없는 비방에 신경쓰지 않는 성정이었으니 다행일까, 이유 없는 맹목적인 비난이 저도 모르게 익숙해져버린 것이었으니 불행일까... 그것은 눈꺼풀을 닫아 시야를 까맣게 했다.
암전된 시야의 한 구석에서 색이 다 바랜 추억이 떠오른다. 빛이 강할수록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쉽게 닳을 수밖에 없다. 다 헤진 추억 속에서는 다정한 사람들과, 매정한 사람들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들이 하염없이 교차한다. 수많은 생명이 곁에 머무르다가 머무른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떠나간다. 작은 것. 짧은 시간을 가진 것. 그리하여 더 깊은 애틋함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은 나약한 생명을 사랑한다. 사람은 다름을 두려워하고 배척했으나 사람이라는 존재의 근원은 분명한 애정이었으니, 그것이 품은 깊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그것은 애틋한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깊은 숲 속으로 떠날까 해."

"언제까지?"

"네가 죽어 없어지고 난 이후까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야?"

"응."

네가 쓰는 언어는 너무나도 매정한데, 그만큼 사랑이 깊어서... 네 말은 늘 이상한 감정을 불러와. 인간이 아닌 자는 그저 사람을 따라 웃는 듯하다가 느릿하게 말을 이어간다. 나는 영원토록 이 자리에 머무르겠다고. 녹음 짙푸른 숲에서 모든 것이 썩어 없어져 거름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사랑을 배워 이별의 슬픔을 알았으니, 모든 감정이 말라 사라질 때까지 이곳에 있겠노라고. 잊힘으로써 죽게 되는 자는 영영 숨어버리길 선택했으나 그것을 사랑한 인간들은 그곳에는 사랑을 아는 괴수가 있다는 구전을 전해 영원히 잊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짧지만 아름답고, 서글프지만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의 사랑이었다.
인간이 아닌 자가 머무르는 숲에서는 늘 짙푸른 향기가 났다. 영원토록 이어지는 그리움과 애틋함의 향기였고, 이미 죽어 없어진 것을 기다리는 미련함의 향기였으니. 그것은 숲에서 또 누군가를 기다렸다. 마음이라는 것은 말라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더라. 상처가 깊을수록 그만큼 깊은 마음이 생기니, 영원히 사라질 일도, 잊힐 일도 없겠구나.

숲 한가운데서는 여전히 괴물이 있다. 그 괴물은 다정한 사람을 닮아, 영원토록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영원토록 사랑하며, 영원토록 기다린다. 그 서늘한 숲이 다 데워질 때까지. 깊은 감정이 다 메마를 때까지. 그 매정한 소문이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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