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명 씨, 화상 흉터가 있는 게 심하게 불편하다면 피부 이식 수술을 받는 게 좋을 거예요. ]
단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조용히 퍼진다. 화상 연고를 보고 있던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는 소피엔의 공방에 자주 찾아왔고, 물건을 자주 사갔다. 특히나 화상 연고는 매번 사가는 것 중 하나였다. 신체의 절반이 화상 흉터로 뒤덮였지만 수술을 고려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라고 묻는다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고 싶지 않았다. 잊어버린 과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감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침음을 흘리며 손끝으로 제 상처를 더듬었다. 신경이 거의 다 죽은 피부에서는 감각이랄 것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나름 멀끔한 손끝에서는 주름진 화상의 흉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수술은 그리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대답을 들은 소피엔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슬 기울인다.
[ 시력을 잃은 눈을 의안으로 대체하지 않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건가요? ]
"어느 쪽이든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네요."
하긴, 눈이 보이지 않는 것 정도는 흠도 아니니까요. 소피엔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음성을 출력했다. 내리누르듯 감은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는 느낌을 들게 했다. 가명은 잠시 생각했다. 서부는 기술이 굉장히 많이 발달해 있다. 치료의 개념보다는 대체의 개념이 더 넓게 퍼져있다. 그런 사회 속에서는 어딘가 없거나 보이지 않는 것은 흠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다만 궁금했다. 어째서 실력 좋은 기술자가 일반적인 의체를 쓰지 않는 걸까? 수많은 의체를 만들고 심지어는 성능이 너무 좋아 오래 쓰지도 못할 의체까지 손수 만들어 사용할 정도의 실력자인데. 그는 이유가 없었으나 다른 사람도 이유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가명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다가 솔직한 질문을 건넨다. 소피엔 씨는 신체를 의체로 대체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소피엔은 잠시 고개를 기울이다가 홀로그램 텍스트를 띄운다.
[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특별하지는 않아요. 궁금하다면 대답해 드릴 수 있어요. ]
"그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소피엔은 홀로그램을 띄운다. 평소처럼 텍스트만 뜨는 것이 아니라 사진 몇 장이 함께 떠오른다. 사람은 생각보다 보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저는 그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고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의 사진과 기계 사진, 그리고 인물의 얼굴까지 다채롭게 변화한다. 이것들 중 소피엔이 타인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식할 뿐. 그 사이에 시선이라는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 예를 들어서, 저는 가명 씨의 얼굴을 보지 못해요. 제가 가명 씨의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부터 제게는 편견이 생길 거예요. ]
보는 것은 편견을 부르고, 편견은 차별을 부른다. 눈이 없는 것은 흠이 아니었으나 모든 것을 해내는 기술자가 편견을 가진다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었다. 소피엔에게 있어 오랫동안 걷는 것도, 목소리를 내는 것도 전부 시선과 같았다. 가지는 순간, 편견이 생긴다. 편견과 차별 중 어떤 것이 먼저 생기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둘은 서로를 부르는 역병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저에게 있어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 될 거예요. 결함은 제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이고요. 충분한 대답이 되었냐는 질문에 가명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정신이 담긴 말이었어요. 멋지다고 생각해요."
[ 멋지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
그래도 화상 연고를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마요. 그렇게 많은 양을 한 번에 다 쓰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거든요. 단정한 웃음을 지으며 내뱉는 말에서 묘한 무게가 느껴졌다. 필요하다면 간단한 시술을 해줄 수도 있다는 텍스트를 눈에 담은 그는 다시 한번 멋쩍게 웃으며 참고하겠다는 말을 잇고 공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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