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도 없이 아무렇게나 솎아내 버린 것. 버려진 것들의 무덤. 쓸모없는 자들의 지옥. 볼란트는 이 땅을 무가치의 정원이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태어난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불로를 타고난 자는 불사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이 푸르고 하얗기만 한 땅에서는 풀조차 흔하지 않았다. 그것은 백야와 극야가 오가는 흑색의 광야였고, 혹독하게도 시린 곳이었다. 이 땅은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버리고 떠나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모든 버려진 것들이 모이는 땅에서 태어나 그곳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애초에 그 기원이 비난이고 고난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그렇다면 탄생 자체가 슬픔이로구나. 버려진 자, 쓸모없는 자의 무덤이 되어버린 이 허연 땅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 이 슬픔을 다 채울 수 있을까.
볼란트는 이 땅에 사는 생명들을 모은다. 최선을 다해 돌본다. 생명들의 손을 잡고 이끈다. 그들이 아프지 않도록. 이 상처뿐인 세상에서 떳떳하게 서서,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끔은 살아가는 것이 죄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죄악감에 물들어 포기하지 않도록. 식물 하나 흔하지 않은, 슬픔만큼은 지천에 널려 있는 이곳에서 그런 슬픔을 말갛게 씻어내려 노력했다. 수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고, 또 손을 흔들면서. 슬픔을 말갛게 씻어내며, 존재의 기원이 슬픔이었던 자도 씻겨나감이 마땅했다. 색채가 씻겨나가고, 설움도 씻겨나가고, 버려진 것들을 한데 모아 정원으로 가꾸며... 씻어내는 것은 지난 설움을 놓아주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하여 공허함마저 씻어낼 수 있을 때가 온다면, 단물이 전부 빠진 추억을 그러안고 잠시 눈을 감아보는 것이다. 길게도 노력해서, 그렇게 노력하면서, 다시금 마주한 세상은 오로지 청색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볼란트 님, 괜찮으세요?"
"당연히, 평소와 같아. 걱정할 것 없어."
"혹시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러시나요? 숭배 말이에요."
볼란트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누군가는 볼란트를 신이라고 여겼다. 누군가는 숭배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생명들은 그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일반적인 생명이라면 진작에 스러졌을 기나긴 길을 걸어온 까닭이다. 그는 자신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을 꾸준히 하고 있었으나 인식이라는 것이 으레 그래왔듯 쉽게 개선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은 생명들은 그의 뜻을 존중하여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질 일이라고 생각해. 볼란트는 그리 말하곤 흐릿한 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돌린다. 장밋빛 하늘 아래서 무가치의 정원을 바라본다. 풀 한 포기도 없던 이 허연 땅에서 장미가 마구잡이로 자라난다. 푸름이 빠져나가고 난 자리에는 장밋빛으로 차오른다. 지금은 청색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씻어내는 것, 지나가는 것, 무르익는 것이 한데 어우러진다. 지나가버린 자가 쥐여준 목도리 사이로 문득 눈송이가 날아든다. 아직 희고 푸른 눈송이인 것을 보니 이 남은 감정을 씻어내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처럼 보였다. 그래요, 그렇겠죠. 함께 서있던 이는 볼란트의 지난 슬픔을 대신하듯, 그만큼 환하게 웃어 보였다. 슬픔이 씻겨 나간다. 짙게 두르고 있던 푸름이 하염없이 녹아내린다. 잿빛 연기색의 머리카락과 극야를 닮은 검은 눈이 하늘의 깊은 장밋빛 장막 아래서 흐리게 너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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