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고향을 떠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궁금했다.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더 많은 곳을 둘러보며 경험하고 싶었다. 어떤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이 알던 누군가처럼 무언가를 지키고 싶기도 했다. 보는 것이 많아질수록 힘이 생기고, 힘이 많아지면 지킬 수 있다. 그는 그런 생각을 말하지 않고, 그 안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키워갔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다고 여겼다. 다름은 차별을 불러온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애초에 존재 자체가 이방인이었으니 어디를 가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아버지, 저... 떠나려고요. 이미 준비도 다 했어요."
"그렇구나. 어디를 가든 조심하렴."
"저, 떠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요. 혹시나, 언젠가 다시 온다면... 반겨주실 건가요?"
당연하단다. 언제든 돌아오렴. 그 말을 듣고는 환하게 웃었다. 고통 없는 낙원도 좋았으나 그는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었다. 평생을 떠돌 운명으로 태어난 것처럼. 마침내 그는 고향, 행성을 떠났다. 열차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다채로웠다. 처음 보는 것으로 가득 차있었다. 헤매는 것은 즐거웠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즐거웠다. 마냥 즐거운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고생하는 일도 있었고, 죽을뻔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알아가는 것, 대화하는 것,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이. 마치 이방인이 아니게 된 것만 같았다. 우연히 만난 사람은 퀸쿠에의 대표자였고, 그 사람과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나서 퀸쿠에에 정착하게 되었다. 평화로움만이 있는 곳에서 살다가 이런 위협이 가득한 곳에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 그 낙원 속에서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그러니 괜찮았다. 이런 위협 정도는 별 문제도 되지 않았고...
하지만 사고가 생길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행성 퀸쿠에는 여러 위협 요소가 많았다. 공기 중에는 독성이 떠돌고, 흔히 괴물이라고 취급되는 찌꺼기도 있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했다. 힘든 사람을 손 놓고 보기만 할 성미는 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뒤로, 퇴로를─"
"□■■님, 아직 로크■□가─"
"젠장, ─!"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얼굴을 녹여내는 산성과 피부를 타들어가게 하는 감각이 또렷하다. 단단하게 펼쳐진 방어막이 산산조각 난다. 피와 암녹색 독액이 뒤섞여서 역겨운 잿빛을 만들었다. 입에서 어떤 액체가 쏟아지는데, 그게 무엇인지 구분할 길이 없었다. 그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통증에도 손을 뻗었다는 사실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직 남은 한 손으로 무기를 잡고, 그대로 괴물을 갈라버린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렀으나 힘이 없었다. 신체가 형체를 전부 잃기 직전에 의식이 먼저 끊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니,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신체가 녹아내려 구제할 방법이 없어 뇌의 데이터만 뽑아내어 전뇌로 옮겼다. 더 이상 인간의 신체가 아닌 것은 어색했으나, 그래도 다행이었다. 죽지 않았으니까. 일단 살면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 누군가가 알려준 말이었는데 그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데이터를 옮기며 잊은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몸체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선을 느끼다가 이런 모습으로는 돌아다닐 수 없으니 육신의 제작을 맡겼다. 퀸쿠에의 대표는 그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 그는 사과를 받는 것을 거절했다. 애초에 본인의 선택이었으니, 오히려 무모한 자신이 사과해야 한다면서. 자신은 이 행성이 좋다고. 다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좋다면서. 그렇게 다쳤으면서도, 그는 위협이 있는 이 땅을 좋아했다. 어쩌면 낙원이라 불리는 고향보다도 더. 대표자의 후계 자리를 권유받은 것도 그때였다. 그라면 분명 진심을 다해 그 땅을 아낄 테니까.
어차피 이런 모습으로는 고향에 가지도 못할 것이다. 유일하게 좋아했던 분,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이 알아본다는 확신도 없었고... 솔직히, 그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이곳을 새로운 고향이라고 생각하자. 하염없이 떠돌던 그에게 드디어 머무를 곳이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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