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그곳은 공허였다. 암흑과 빛만이 있었다. 처음이라고 할만한 지점에는 그런 것들밖에 없었다. 그저 무수한 반짝임만이 있을 뿐.인식 없는 존재함이 어떤 의미가 있냐 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의미도 없는 곳에서 수많은 반짝임들이 모이고 모여 다른 것을 빚어냈다. 그것이 생길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특별한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그때에는 없었다. 있었어도 없는 것과 다름이 없는 까닭이었다. 존재의 탄생이라고 함은 오로지 인식에 있다. '이것이 여기에 있노라'는 생각. 모든 것은 그것으로 성립된다.
그렇게 수많은 반짝임이 그저 존재하기만 할 때, 누군가가 그것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수많은 생명이, 인간이 그것에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암흑 속에 있던 모든 반짝임은 별이 되었고, 그렇게 모든 신이 처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앎을 깨우친 신들은 생명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신들은 수많은 것에 이름을 붙이고 찬미하며 귀중하게 여기는 인간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암흑 속의 반짝임을 찬미하듯, 수많은 신들 역시 생명의 마음을 귀이 여기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는 신도, 인간도 아닌 반짝임들이 떠돈다. 신 그 자신이나 인간보다도 신을 오래 지켜봐왔고, 스스로를 인식했으나 침묵하고 떠돌아다니길 선택한 존재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 각자 다른 별빛을 두른 채로 신과 인간 근처에 있는 것. 그들은 그러한 특성 덕분에 어디든 오가며 이야기를 전달한다. 때로는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기도 하고,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하기도 한다. 인간들은 그들을 신의 사자라고 불렀고, 신은 그들을 전달자라고 불렀다.
개중에는 특별히 오래된 반짝임이 있다. 별과 닮은 것, 별보다 오래 사는 것은 신도 인간도 아닌 자는 수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마치 혜성처럼, 유성처럼, 하염없이 여행하는 별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무언가를 인식하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런 능력 덕분에 다른 반짝임들보다도 더 신과 인간의 가까이에 존재했고, 이윽고 신의 사자로써 인식되어 모두의 앞에 서게 되었다.
모든 것은 인간과 신의 뜻대로.
그 말을 전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경외심, 공포, 선망, 의구심, 분노, 슬픔, 절망감... 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강렬한 올곧음. 혜성을 닮은 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그 모든 것들 중에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단지 존중할 뿐이었다. 신의 뜻과 인간의 뜻을 존중했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존중했다. 다만 그들의 생각에 이해하며 공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지만 존중하여 고개를 끄덕인다. 인식하는 주체만 존재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모순점 한가운데 서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존재로 남는다.
긴 머리카락의 끝단이 노란 태양빛으로 물들인 듯한 황홀한 빛깔을 띤다. 온갖 별조각들로 이루어진 존재는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수많은 곳을 떠돌아다니는 혜성이었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보다도 신과 더 소통이 잦아, 몇몇 신은 그를 눈여겨보기도 했다. 가끔은 태양 조각으로 빚어진 것만 같은 그 존재를 곁에 두고 싶어하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그가 왜 신이 아닌 것인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특출난 인간은 정해진 운명이 다하면 신이 되곤 하는데, 혜성을 꼭 닮은 그 존재는 어째서 신이 아닌 것인지.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혜성을 닮은 자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는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존재의 본질이 별의 잔해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인간과 신의 뜻대로.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따라다닌 말이었다. 모든 것은, 그들의 뜻대로. 태양 조각으로 빚어진 자는 시릴 정도로 새파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한다. 마치 관망하는 것처럼. 지켜보는 세계의 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