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다. 서늘하게 식은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느릿하게 두어 번 문지르다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하던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아 나와서 하염없이 앉아있었더니 어느덧 밤이었다. 밤하늘에 느릿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인다. 술이 먹고 싶다. 그러니까... 칵테일. 칵테일이 먹고 싶었다. 느릿하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다가 몸을 일으킨다. 이 근처에 바가 있으려나.
마가렛은 술을 즐기는 편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칵테일을 좋아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한 잔에서 두 잔, 좋은 일이 있거나 기쁜 것을 나눌 때는 네 잔에서 다섯 잔까지. 절대 과음하지 않을 정도로. 가끔 너무 가라앉을 때면 술을 퍼마시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었으나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제력이 뛰어난 편이기도 했고, 술에 취해 사고를 치는 사람을 꽤 가까이서 보았으니까. 술을 먹고 사고 치는 사람은 술을 안 먹고도 사고를 치기는 하지만... 사람 일은 혹시 모르니까. 골목길을 하염없이 배회하듯 걷는다. 짧은 단발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슬슬 춥다는 감각이 밀려올 때 즈음, 한 가게의 입구가 눈에 띄었다. 칵테일 바처럼 보이는데... 마음에 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가렛은 처음 보는 칵테일 바를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장소에 대한 호기심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질 않았으니...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간다. 바깥보다는 온기가 감돌지만 그렇다고 마냥 따뜻하지는 않은 기묘한 흐름이 감싼다.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곤 적당히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주크박스에선 느긋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특별히 음악을 찾지는 않았지만 가끔 들어가는 칵테일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늘 새로운 기분을 몰고 왔다.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주세요."
"네, 손님."
간단한 신분 검사 이후에 칵테일이 만들어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다. 맑은 밀색 머리카락과 녹빛 눈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같고... 잠시 혼자만의 감상에 빠져 있다가 어느덧 제 앞에 놓인 칵테일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다. 집에서 종종 해먹기도 하지만 이 맛이 영 나지를 않는다. 하지만 칵테일의 맛보다는 이 바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지나치게 조용한 것도, 그렇다고 시끄러운 것도 아닌 이 분위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적당히 유쾌한 듯한 분위기를 가진 바텐더도 괜찮았고. 바텐더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 대한 것. 그런 말들을 나누면서 혼자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참 따져야 하는 것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따지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하는 일이 워낙 예민해야만 해서 날카로워진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참... 피곤하다.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는 직업을 고른 내 잘못인가. 어느 순간에 다 비어버린 칵테일 잔이 손의 온기에 뜨뜻해진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마셔야겠다. 더 마시게 되면 취할 것만 같은 감각이 밀려온 탓이다.
간단한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다가 문득 질문을 던진다. 여기, 매일 운영하나요? 그럼요. 그 대답을 듣고는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나온다. 좋은 칵테일 바를 찾은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