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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마음정리.

by @Zena__aneZ 2024. 11. 24.

너는 그렇게 다 남기고 떠나서 정리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왜 이렇게 어지르기만 해 놓고 가는 건지 알 수도 없다. 들이켜는 숨에서는 물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상실의 메마름이다. 할 수만 있다면 온통 쉬고 싶다. 이 어질러진 마음의 방에 하염없이 누워서 쉬고 싶었다. 누군가를 놓아주는 것을 정리한다고 한다. 나는 늘 정리를 어려워했고, 너는 늘 정리를 잘했는데. 그렇다면 떠나는 건 내가 해야 맞는 게 아니었을까? 내가 가면 너는 내 흔적을 차곡차곡 잘 정리했을 텐데.

네 습관을 따라 은색 열쇠는 항상 오른편에, 동색 열쇠는 항상 왼편에 두었다. 가끔 반대로 놓으면 잘못 놓았다며 웃는 소리를 내는 네가 좋아 이따금 반대로 두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내 사소한 습관, 모든 정리정돈에 관한 것 모두 너에게서 온 것인데. 어째서 너는 먼저 가버린 걸까? 어째서 이 잔뜩 어질러진 차가운 방 안에 나를 혼자 두고 가버린 거야?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정리란 그런 거지. 이 공간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는 것. 그 감각을 좋아해. 너의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하지만 정리는 필연적으로 버리는 과정이 필요한데, 야트막한 흔적 하나도 놓치기 싫어하는 내가 정리를 한다니. 네 흔적을 마치 쓸모없는 것 취급을 한다니. 내가 너를... 버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황색 조명 아래서 일렁거린다. 아, 네가 좋아했던 빛깔이다. 사소한 것 하나 버릴 수 없어서 간직하고 있는데, 어차피 내가 정리하지 않아도 그것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썩어 문드러질 텐데, 언젠가는 그 목소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 내가 너를 정리하는 게, 그게 얼마나 비참하고 이기적이고 비겁한 짓이니...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살아가는 것이 추억을 흐리게 만들까 봐. 기억을 흐리게 만들까 봐. 지금 숨을 내쉬면, 내가 뱉어버린 숨을 타고 내 안에서 천천히 썩어가는 네가 훌훌 날아가버릴까 봐. 그것이 두렵다.

 

정리라는 것이 뭘까. 마음을 정리할 수는 있을까. 황금 빛깔이 일렁인다. 이것은 또 네가 좋아하는 색이었다. 그 찬란한 색을 눈에 담고 있노라면, 네 눈빛이 기억이 난다. 공간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는 것이 좋아. 나에게 정리라는 건 그런 거야. 하지만 살면서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없잖아. 영원히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나는, 매일 정리를 해. 매일 사랑을 해. 내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했는지 흐릿하다. 눈을 뜨는 게 너무나도 두렵듯이, 눈을 감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네 오색찬란한 빛깔이 흩어지는 것이 무섭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기억해. 후회하지 말고. 너는 생존자야.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뜻이야.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 그곳에는 또 새로운 것을 채워 넣으면 되는 일이니까. 오래도록 잊고 있던 말이 왜 이제야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분명한 것은 없다. 어느 날 악마처럼 너에게 찾아온 병마도, 천사처럼 나에게 찾아온 기적도, 무너지던 건물 사이로 오색찬란하게 빛나던 네 얼굴이. 그것은 두려움도 뭣도 아닌 안도감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살아가야만 하는구나. 네 뜻은 오로지 그것이었구나. 정리한다는 것의 의미는 언제나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았다. 그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들일 공간의 마련이다. 오래된 것은 썩어 병을 부르니, 그런 병에 걸리지 말자고. 그림자를 하염없이 매만지는 눈으로 삶도 매만지자고. 마음의 공간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찬란하게 빛나던 너를 유지하자. 이것은 온전히 너라는 존재의 영원성이다. 이 마음의 방에서 썩지 않는 너, 빛나던 너, 이제는 떠오르지 않는 너, 하지만 사랑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을... 오래 두어 썩지 않을 너. 이상하다.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데, 몸도 여전히 아픈데, 썩어버린 한 조각을 멀리 내던지니 네가 손을 흔드는 것이 떠올랐다. 아무리 정리하지 않아도 네가 좋아하는 황금 조명은 여전히 아름다운 빛깔이고, 찬란하던 너는 여전히 고운데. 살아가는 것으로 너를 썩게 두었다니. 내 탓이구나. 내 탓이야.

 

오랜만에 집을 청소했다. 네 행동을 따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의지로. 그래, 이 집은 네가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다. 이런 곳을 그대로 썩힌다니, 네 얼굴을 볼 염치도 없이. 정리라는 것은 이 공간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했지. 비로소 그 말을 이해했다. 나는 너를 따라서, 오래도록 이 공간을 어루만지고... 흐려져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너의 찬란함만을 심장에 담는다. 이것이 마음 정리일까. 부디 그러길 간절히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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