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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나의 친애하는 절망감.

by @Zena__aneZ 2024. 11. 18.

아무렇게나 깨진 유리만큼 날카로운 모래를 찢어진 폐 안에 밀어 넣고 까맣게 타들어가는 약초 막대를 입에 물고 있는데, 하늘은 또 빌어먹도록 파래서, 지옥의 빛깔은 이토록 파랗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지옥 안에서 서로를 떠받들고 있다. 혹은 밀어 넣고 있거나. 그래. 생매장. 생매장이다. 이건 분명 생매장이다. 희망도 묻고, 시체도 묻고, 살아있는 것도 묻고... 모든 것을 차가운 흙더미 속에 밀어 넣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으니 우리의 삶은 오로지 무가치함으로 증명되었다.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 하. 왜, 더 크게 비웃어줄까? 큭큭대며 웃음을 삼킨다. 삼킨 것에서 쓰린 것이 느껴진다. 하하... 너무 웃겨서 그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잘도 지껄인다. 사람은 희망 없이도 살 수 있다. 입에 물고 있는 약초 막대에서는 쓴맛만 났고, 제대로 된 음식물은 진작에 다 썩어 문드러졌으니. 누군가가 그런 말을 써놓지 않았던가? 지옥에 처음 가면 듣는 말이라고. 이곳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우스운 말이다. 희망은 부피도, 무게도 없는 무정형의 것인 주제에 무겁기는 또 더럽게 무거워요. 무거운 것은 진작에 다 내다 버렸다. 우리는 가장 값싸고 무거운 것을 먼저 버렸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깨우칠 수 있는 사실을 굳이 글로 적어놓는다니, 그렇게 멍청할 수가... 

 

유기체, 이제는 무기체가 되어가는 것. 파란색이 잘 어울리는 단어들은 왜 죄다 하나같이 오염되기 쉬울까? 여기에는 투명한을 붙이고 읽어봐. 물, 하늘, 숨, 유리, 영혼, 양심. 그리고 여기에는 더러워진을 붙이고 읽어봐. 손톱, 페트병, 묘비, 말린 꽃, 죽음. 투명하고 깨끗한 파란색일수록 쉽게 깨지고 더러워진다. 아, 쓸모없이. 쓸모없게도. 우리의 삶은 다 산산조각이 나버렸는데. 단언하건대, 파란으로 시작하는 것 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것은 영혼이다. 깨끗한 파랑에서 더러워진 파랑으로. 썩어 문드러져 파랗게 되어버린 것. 그러니까, 살아있었던 사람. 시체 말이야. 사체라고 해도 되는 거. 온기조차 훌훌 떠난 몸에 영혼이 있을까? 그것이 온전하니? 투명하고 파란 것이 다 깨져서 버려졌는데, 우리는 가장 가치 없고 무거운 것을 빨리 버리잖아.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었던 것, 이제는 그저 쓸모없는 고깃덩이를 버리지 않고서야 배길 수가 있겠어? 미친 웃음이 흐른다. 비웃음이나 광소와 같은 것. 하하!

 

파랗게 된 삽으로 단단한 흙을 푹푹 찌른다. 땅이 파랗게 얼었다. 파랗다. 너도 파래졌네. 파리한 안색을 하더니, 이제는 나까지 파란 절망감에 물들이고. 언젠가 또 들은 말이 생각나. 젊은 날을 청춘이라고 부르는 거 말이야, 파랗게 녹이 슬어버린 삶이라서 그랬나 봐. 푸르댕댕한 몸을 어설프게 파놓은 구덩이 안에 넣는다. 삽으로 또 흙을 푹푹 찌른다. 눈에서 투명한 게 쏟아진다. 눈물. 눈물이다. 살아있는 것이 가진 가장 깨끗하고 투명한 것. 종극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이제 너는 흘리지 못하고, 나만이 흘리는 것 말이다. 차가운 흙을 보다가 삽을 들었다. 흙보다도 더 차가운 몸을 바라보다가 구덩이 안에 흙을 채워 넣는다. 네가 외롭지 않도록 산산조각 난 내 마음도 함께 묻는다. 입에 물고 있던, 미약한 불씨가 남아있는 약초 막대도 함께 묻는다. 언젠가 한 번은 이 불씨에 손을 덴 적 있다. 정말 탈 듯이 뜨거웠지. 하지만 이제 너는 그 열기조차 느낄 수가 없으니까. 영혼이 떠난 몸이 데워지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그게 무슨 마음인 줄도 모르고. 너는 이 가치가 없는 땅에서 죽어버렸구나. 나는 살았구나. 우리는 우리를 서로 떠받들고 있었는데, 네가 살아남는 데에 있어 가장 쓸모없는 것이 되니 이 땅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너도 나처럼 했으리라. 우리는 닮은 구석이 있잖니...

 

삽을 버린다. 상처가 난 손에 기다랗게 찢은 천을 감싼다. 알싸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 슬픔이네. 절망감도 함께 있어. 둘은 정답게 손을 맞잡고 쏟아져. 마치 너와 나처럼. 이제는 나만 남아서, 그 슬픔에 또 눈물이 흐르네. 눈물이 바닥에 닿아서 산산조각나. 마치 너처럼 무너져 내리고 말았어. 절망감이로구나. 이 세상을 뒤덮은 파란 마음이 바로 그거야. 온통 파랗게, 또 파랗게 절망하며 살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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