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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봄날의 축제

by @Zena__aneZ 2025. 2. 3.

하늘에선 꽃잎이 비처럼 내렸고, 적당히 선선한 바람은 선명한 빛깔로 반짝인다. 담홍은 서서히 주황빛이 되어가는 하늘 시선을 한 번 주다가 생각에 잠겼다. 마을에서 곧 제사를 지낸다더라. 그 말에 괜스레 마음이 복잡해졌으나 이내 생각을 말끔하게 지우고는 종종걸음으로 냇가로 향했다. 담홍의 동생들은 물장구를 치고 놀다가 그에게 다가간다. 언니, 언니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서 머리칼을 마구 쓰다듬는다. 우리 장난꾸러기들, 잘 놀고 있었어? 이제 곧 추워질 테니까 집에 가자. 
 
"어머니랑 아버지는 오늘도 안 와?"
 
"으응... 아무래도 일이 많으시니까. 갈까?"
 
담홍은 막냇동생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유독 체력도, 건강도 안 좋았던 막내라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한 팔로는 막내를 안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둘째의 손을 잡아준다. 화야, 막내 돌보는 건 안 힘들어? 그 말에 표정이 밝아진다. 언니가 언제나 손을 잡아주어 괜찮다고. 그리고 율이도 말을 잘 듣는다고. 담홍은 동생들을 눈에 담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동생들 다 컸네! 언니가 걱정을 조금 줄여도 되겠다! 그 말에 둘이 활짝 웃는다. 부드러운 애정이 넘실거린다. 맞잡은 손에 온기가 퍼지고, 한없이 부드럽다.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딘가 이상했다. 담홍은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어머니와, 집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있는 것을 본다. 맑게 웃으며 방안으로 동생 둘을 들여보낸다. 천천히 곁에 다가간다. 방금까지 나누었던 모든 다정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서늘하기만 했고...
 
"어머니, 아버지. 오늘 마을에서..."
 
"떠도는 소문 말이지. 시기가 되었어."
 
그 말뜻을 알아채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성인이 되지 않은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를 바친다. 오 년에 한 번씩. 가끔은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를 대신해 어린아이를 바칠 때도 있었다. 아니, 그럴 때가 더 많았다. 가장 오래된 전통은 끔찍한 악습이었다. 오 년 전에 바쳐진 것이 가장 친한 친구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친구 대신 막냇동생을 바쳤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하건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은 귀하니까. 그 일로 미쳐버린 친구가 마을을 뛰쳐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죽었을지, 살았을지, 죽은 것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을지. 아이를 바쳐가며 부를 얻은 집안에는 황량함만이 감돌았는데...
 
"저는 동생이 저 대신 바쳐지는 건 싫어요."
 
"화야를 생각해야지. 네가 없으면 둘째는 누가 챙기라고. 율이는 어차피 오래 못 살 거야."
 
"그래서 저 대신 율이를 바치겠다, 그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시죠."
 
담홍아, 이성적으로 생각해. 넌 주술에 재능도 있고, 어른들도 다 너를 좋아하는데 왜...
저는 동생을 산제물로 바쳐서 살아남을 만큼 간절하지 않아요.
단호하게 말을 끝내고는 고개를 숙이고 방문을 열었다. 동생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대화를 다 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 담홍은 양팔을 뻗어 동생들을 끌어안는다. 언니, 가? 가면 언제 와? 막내의 물음에 담홍은 가만히 침묵하다가 부러 밝게 웃는 모습을 보인다. 화야야, 율아, 언니는 율이가 언니 동생이라서 행복해. 다음에 꼭 만나자. 약속.

 
담홍은 집 밖에서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가만히 동생을 놓아주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간다. 몇 주가 지난 후 축제가 열렸다. 담홍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평생 입지 못한 고운 비단옷을 입었다. 옥으로 만든 팔찌를 끼고, 배운 대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수없이 떨어지는 꽃잎 한가운데서 가장 고운 것처럼 서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거의 2주 가까이 이어진 축제의 끝에는 항상 불꽃이 있었고, 전부 다 불타버린 공간에서 차가운 것이 되어간다. 산제물이 된 것. 서서히 죽어가는 것. 담홍은 온기를 잃어가며 웃었다. 축제의 끝자락에서 동생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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