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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꿈과 깊은 새벽.

by @Zena__aneZ 2025. 2. 8.

신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듯 힘겹게 눈을 뜬다. 현실감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 어렴풋하게 흘러간다. 이건 꿈이다. 꿈 속의 마을은 익숙한 형태가 아니었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옛날 마을의... 언젠가 담홍이 말해주었던 형태였다. 이상한 꿈이네, 하고 있을 때 웃음소리가 들린다. 곧 축제가 시작한대. 이번에는 14일 동안 한다더라. 그렇게 오래 하는 축제가 있었나? 옛날에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언니한테 물어보면 대답해 주려나... 담홍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었다. 신은 그런 담홍을 존중해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고. 하지만 단순히 축제에 관한 거라면...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축제에 관한 말만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했다. 말소리가 들리는 길을 따라 걸어간다. 굳이 꿈에서 깨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 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궁금했다. 보통 꿈은 두서없이 흘러간다. 자각몽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꿈은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딘가로 이끌고 있다. 느릿하게. 하지만 강렬하게. 마치 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는 것처럼.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파랗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흐린 형태 빼고는 보이는 것이 없다. 신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14일간의 축제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들떠있기도 했지만 어딘가 경직되고 긴장한 것 같기도 했다.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그러한 불안정한 흐름은 조금씩 심해졌다. 걸음의 끝에 보인 것은 제단처럼 생긴 곳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넓고, 꽃향기가 퍼지는. 하지만 결코 향기롭지는 않은 꽃내음에 불쾌해지고 말았다.
 
문득 음악이 흐른다. 관악기와 현악기가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이윽고 익숙한 형태의 사람이 보였다. 신의 표정이 밝아지다가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귀신의 모습일 때에 입고 있는 옷과는 달리 굉장히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치장된 옷이었으나 그것이 담홍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담홍의 눈이 묘하게 풀려 있던 것도 기묘했다. 언제나 선명하게 빛나는 눈에는 다정함이 가득했으나, 지금의 담홍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정함이나 또렷함, 사소하지만 애정 어린 조각과 같은 것.
 
언니. 조용한 부름, 하지만 확실히 닿았을 부름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곧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고운 춤사위는 신이 익히 봐왔던 것이었으나 명확하게 달랐다. 어떤 것이 달랐냐고 하면, 글쎄. 몸이 마치 억지로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삐걱거린다는 표현이 맞을까. 담홍은 자연스럽게, 부자연스럽게, 이상하리만치 경직되었지만 아름다운 춤사위를 이어 나간다. 신은 제 표정이 어떻게 구겨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불쾌함을 곱씹으면서 지켜보고 있다가... 곧 경악하고 말았다.
춤을 추고 있는 제단의 위에 자잘한 보석이 흩뿌려진다. 맨손으로 만져도 상처가 날 법한 것들. 그 사이에 금속 조각들과 꽃잎들이 보인다. 잠시 춤을 멈추었던 담홍은 곧 발을 내딛는다. 보석과 금속조각이 연약한 살을 마구잡이로 파고든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담홍이 실제로 겪은 일인지, 그저 끔찍한 악몽일 뿐인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이것을 왜 축제라고 부르는지. 풀려있는 눈은 그저 탁하기만 할 뿐이었고, 신은 곧 그것이 주술과 마비약의 효과라는 것을 알아챘다.
혈관 속의 피가 싸늘해지는 감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끔은 이해하고 싶다가도, 깨닫고 싶지 않았다. 신이 무어라고 소리 지르듯 외쳤다. 당장 그만두라고, 이건 미친 짓이라고, 신 본인도 자신이 이렇게 화낼 수 있었나 싶었다. 모든 것이 싸늘해지다가 들끓는 감각이 밀려든다. 이윽고, 물살처럼. 담홍은 여전히 춤을 추었고, 신은 끔찍한 감각 속에서 언어가 되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역겨운 보석의 빛깔이 시야를 채운다. 담홍이 곧 온갖 보석과 금속이, 꽃잎이 마구잡이로 파고든 발을 내디뎌 천천히 신에게 다가갔다. 곧 양팔을 뻗어 신을 끌어안는다. 담홍의 몸에서 불씨의 냄새가 났다. 이건 그저 꿈이야. 그러니 일어나...
 
"..."
 
"신, 악몽을 꿨어?"
 
반짝 뜨인 눈 안에 담홍이 비쳤다. 걱정스러운 눈길. 익숙한 다정함이 담긴 것. 담홍은 신을 바라보다가 손수건으로 조심히 식은땀을 닦아준다. 찌푸려진 얼굴을 한 채로 담홍을 바라본다. 언니, 언니가 겪은 일. 진짜야?
 
"내 기억을 엿봤구나."
 
"언니, 그 제단 위에서 겪은 일... 그게 진짜였어?"
 
"... 응, 진짜였어."
 
"그건 미친 짓이었어! 주술로 연명한 거나 다름이 없었는데, 왜..."
 
어째서 여전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눈물이 서서히 옷자락을 적신다. 담홍은 목이 메인 듯 가만히 있다가, 양팔을 뻗어 신을 끌어안았다. 마치 꿈에서 그런 것처럼. 왜냐면, 나는 그 춤을 가족에게 알려주고 싶었어. 좋아할 것 같아서. 예쁜 춤과 노래를... 그래서 너에게 보여주고 알려준 거야. 신은 내 동생이니까. 담홍은 울 수 없는 몸을 가진 것이 문득 서러웠다. 차라리 같이 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토록 슬프지 않았을 텐데. 함께 울지도 못하고 흐린 온기만을 주는 건 너무 슬퍼서... 담홍은 신을 가만히 끌어안은 채로 하염없이 등을 토닥였다. 새벽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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