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라는 지난 며칠간 심각한 이인증을 앓았다. 육신에서 방출되는 느낌, 이 세상에서 훌훌 날아서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감각이 계속 함께했다. 억세게 눌러 잡고 있던 금속 도끼는 너무나도 무거웠고, 발에 닿는 눈은 차가웠다. 도끼를 질질 끌고 다니던 아이는 마치 이단 같기도 했고 천사 같기도 했다. 자아가 육신에서 방출됐기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금속 도끼로 마물을 내리찍으며 며칠을 걷기만 하던 날, 가족들과 가족처럼 여긴 사제들이 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나던 날이었다. 이윽고 그런 착각이 일렁거린다. 그 어떠한 것도 아프지 않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착란을 불러온다. 서서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죽음이 목전에 있다. 그 단어를 제대로 배운 적 없음에도 그것을 선명하게 알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상할 정도로 투명하고 깊으니까. 티타라의 손에서 무거운 도끼가 떨어진다. 그 누구보다도 힘의 원천과 마법의 원천의 가까이에 접근했기에 지맥의 힘에 기대어 살 수 있었으나 곧 한계였다. 연약하고 무른 몸으로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의식이 희미해질 때쯤,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성경에서 본 기억이 있다. 끝에는 천사가 찾아오니 끝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티타라는 드디어 가족들의 웃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처럼 웃었다. 한낮의 태양처럼 환하게.
"그 어떠한 것도 아프지 않았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어요..."
방출된 자아. 육신의 가벼움. 이윽고 훌훌 날아가는 감각의 앞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혼잣말이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 찾아간 천사도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을까. 천사는 저마다 다르게 생겼을까... 천사라고 생각한 이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외침이었는지, 나지막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칼리고는 설원 한가운데서 홀연히 서있는 어린아이를 본다. 제 자식들과 비슷한, 그것보다 조금 더 어릴지도 몰랐다. 눈밭에 나뒹구는 금속 도끼에는 마물의 피와 독이 묻어 있었고, 몸에는 마법적인 힘이 얽혀 있었다. 지맥의 힘이 조금이라도 약한 곳에 있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흰 원피스 같은 옷의 끝부분은 해지고 찢어져 더러워져 찬 바람에 힘없이 흔들린다. 망토를 벗어 아이의 몸을 감싸주었다. 너무나도 작고 여렸다. 어두운 보랏빛으로 물든 신체 말단 부위에 치유 마법을 흘려 넣는다. 곧 피부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곤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칼리고는 아이를 조심히 안아 들었다. 몸이 가볍다. 생명이 사라진 것만 같은 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여렸다.
"..."
티타라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처음 보는 방안에 놓여 있었다. 티타라는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진실되게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손에 닿는 이불의 감촉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고, 손발에 감긴 붕대에서는 미약한 온기가 머물렀다. 온기가 훌훌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만났던 건...
"일어났니."
"...... 아,"
천사님? 칼리고는 처음 들어보는 호칭에 드물게도 당황했다. 천사? 의문이 담긴 목소리에 티타라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말을 잇는다. 성경에서, 죽어가는 사람 앞에 찾아온다고... 해서요. 아, 닌가요...? 성당에서 키운 아이구나. 제물로 쓰기 위한 아이인 것 같은데, 왜 아무것도 없는 설원까지?... 이유를 유추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 죽어서 혼자 탈출했을지도 모르고. 북부에서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티타라는 잠시 제 손을 내려다보다가 칼리고를 보곤,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 짧은 말을 내뱉는 데에 심장이 지나치게 빠르게 뛰었다. 방출되었던 자아가 다시 육신에 착색되듯 내려앉았다.
그 이후로 티타라는 칼리고의 집에 머물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내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티타라는 여전히 이인증과 정신착란에 시달렸지만 조금씩 나아진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해질 때쯤, 티타라는 다시 무기를 잡았다. 누군가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두려웠고, 감각이 방출되는 느낌이 함께했다. 하지만 티타라는 과거처럼 허무함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거대한 둔기를 휘둘러 익숙하게 마물을 갈랐다. 깔끔하고 우아한 궤적을 따라 샛노란 별빛 같은 선이 그려진다. 눈밭 위에 흩뿌려진 마물의 피를 눈에 담다가 뒤돌아서 칼리고를 본다. 무기를 잡은 손이 연약한 들풀이 흔들리듯 떨리고 있었다. 몸을 숙여 시선을 맞추고,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건넸으나 티타라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서는...
"저, 저는... 절대... 죽이고, 죽고, 방관하고... 그러지 않, 않을 거예요..."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 보호본능이었을지도 몰랐다. 눈앞에서 그리 죽어나간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또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칼리고는 티타라의 손을 조심히 포개어 잡았다. 흉터가 어지럽게 교차한 손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지난 날의 설움처럼.
'자캐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 아래 담홍색 들녘 (0) | 2025.02.05 |
---|---|
봄날의 축제 (0) | 2025.02.03 |
검푸른 빛깔의 이름은 침묵 (0) | 2025.01.27 |
한밤의 빛. (0) | 2025.01.24 |
찬란한 저주. (0) | 2025.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