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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하늘 아래 담홍색 들녘

by @Zena__aneZ 2025. 2. 5.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태양 아래에 서있다. 머리카락이 매끄럽게 물결치며 그 사이로 햇살이 차오르니 금빛 머리카락이 마치 선명한 담홍색으로 빛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감는다. 햇살을 받아 붉어진 눈 안에서 기억이 떠오른다. 타오르는 불길과 그 사이에 어우러지던 감각, 숨이 막히는 것과 지독하게도 아름다웠던 하늘... 이제는 흐릿해져버린 과거의 파편을 끌어안는 것은 미련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 저물어버린 이야기를 기억해야 했으니까. 기억하고, 또 노래해야 했으니까. 사람은 배운 대로 살아가며 익숙한 것을 쫓는다. 그것이 불행이거나 희생적인 이타심일지라도.
감았던 눈이 뜨인다. 백색의 햇살이 눈부시다. 옥색과 하얀 구름색 눈이 찬란하게 반짝인다. 저 높은 하늘에서 쏟아지듯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 위를 훑고 지나간다. 뻣뻣한 옷의 감촉과 부드러웠던 천의 감촉을 아직도 기억한다. 평생 입어보지 못하리라 여겼던 옷은 분명히 좋은 옷감이었으나 몸에 잘 맞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하며 뻣뻣함까지 느껴지는 옷이 가장 잘어울렸다.

어렴풋한 꿈결의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머리카락을 시원스럽게 흩날리며, 축제의 시작을 알리듯 양손을 높이 뻗는다. 곧 손을 내려 뻣뻣한 치맛자락을 잡고 마치 별빛 위를 노니듯 걸음을 옮겼다. 동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서쪽에서 남쪽으로. 옥팔찌가 흔들거린다. 산책을 나가는 듯한 자유로이 걸음을 옮긴다. 노래 없는 춤선이 며칠이고 이어진다. 숲의 푸름이 깃들고, 기쁨이 깃든다.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이 지나간다. 힘듦도, 고통도 없이 자유롭게 추는 춤은 낯설면서도 좋았다. 이것을 동생들에게 알려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은 여전히 있었다. 노래도, 춤도, 악기 다루는 법도...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십 년의 시간동안 배운 모든 이야기, 그리고 모든 지식...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그냥 안아주고 싶었다. 온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저 만족했다. 다시는 볼 수도 없으리라 여겼던 동생들을 하염없이 끌어안을 수 있었으니까. 담홍빛이 지천에 깔린 들녘에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린다. 아스라질 듯한 감각, 결국 마주한 동생들의 얼굴. 끝에서는 울었던 동생들을 끌어안았던 기억. 어른이 되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막냇동생은 멋진 어른이 되었고, 가끔씩 크게 사고를 치거나 탈이 나 안심할 수 없었던 장난꾸러기 둘째 동생은 믿음직한 어른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삶이었노라고. 내리누르듯 감은 두 눈이, 입꼬리가 곱게 휘어지며 환한 미소가 된다. 미친 사람의 웃음이라기에는 자유롭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사람이 고통으로만 살아낼 수 있느냐고. 하지만 단 하나의 기쁨으로 견뎌내는 것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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