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다치는 것은 매우 생소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거야. 늘 누군가를 다치게 했던 주제에 끝에서는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다니. 정말 과분하기 짝이 없지 않나? 하하. 웃음이 흘러나온다. 자조적인 웃음인지 뭔지 알 길도 없이 계속 흘러나오더라.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남을 상처 입혔으니 좋은 꼴이겠지. 데네브의 말에 신의 표정이 드디어 구겨진다. 타인의 혈흔은 현실감이 없었고, 몸속에 흐르는 피는 손과 뺨에 닿는 순간부터 차가운 것이 되었다. 허공을 배회하던 뻣뻣한 눈길이 데네브를 향했다. 언제나 바로 서있던 자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일렁이는 영혼처럼 말이다. 어째서 영혼은 중심점이 흔들리는 불꽃인가? 그것은 무형의 것인 주제에 그토록 강인하면서도 연약해 쉽게 무너지고 만다. 다만 지키고 싶다는 그것만큼은 불꽃이 타오르는 심지와 같았다. 지키고 싶은 것은 상처 입히는 것보다 조금 더 본질적인 탓이다. 그러니까... 애정. 사람을 지탱하는 그것 말이다.
데네브는 곧 넘어질 듯 위태롭게 서서 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이렇게 볼 때는, 다친 곳은 없었다. 깨끗한 손으로 신의 어깨를 조심히 짚었다. 다친 곳은 없지. 신이 무어라 말했지만 그것이 데네브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데네브는 자신의 영혼 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로지 상처뿐인 생이었다. 상처를 입히는 것은 데네브에게 있어 상처를 입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은채로 평생을 살았으니 당연하겠지. 하면 상처를 입은 자들은 어떤가?
데네브가 상처입혔던 모든 것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용서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니, 어쩌면 용서를 건넬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이 죽었으니까. 죽이는 것이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면, 진실된 죽음은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가? 사람의 영혼이 종종 새나 불꽃에 비유되곤 하던데, 그 말이 딱 맞았더라. 새장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새는 없다. 타오름 없이 빛나는 불꽃도 없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영혼의 종착점을 향해 떠난다. 정신이 점차 아득해진다. 데네브는 실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를 다치게 했으면서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 건 결국,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이가 자유를 향해 날아가버려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자유를 갈망하며 타올라 사라진 불꽃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서 그랬던 건지...
"그동안 나쁜 태도로 대했던 건 미안해."
검은 눈에 일렁거리는 감정이 담긴다. 결국 지켜냈다는 안도감, 약간의 자기위안, 그럼에도 결국 상처를 준 것 같다는 미안함이 뒤섞인다. 입가에 지워질 듯 흐릿하게 생겨난 미소는 곧 꺼질듯한 불꽃을 닮아 있었다. 애석하게도, 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다. 머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져서 그런 모양이야. 데네브는 흩어져가는 정신을 애써 붙잡고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죽어버릴까 봐 무서웠어. 내 무력함이 또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그게 무서웠던 거야. 타의로 사람을 죽였던 적이 있어. 꽤 많이 죽였어. 그들이 다 자유를 갈망했어서 죽였어. 내가... 데네브는 지끈거리는 통증을 애써 무시한다. 의식이 천천히 잠기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말해야 했다. 말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해서. 네가 자유롭길 바라. 자유를 갈망하다가 새장 속에서 죽어버리는 새가 아니라, 한때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그렇게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데네브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불쏘시개같은 삶이 다 타버리기 전에 생각한다. 아, 드디어... 지켜냈구나.
'로그 선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懇願. (0) | 2024.10.12 |
---|---|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더라. (0) | 2024.09.16 |
세상을 나누는 것. (0) | 2024.08.31 |
일회성 만남 ^_^ (0) | 2024.08.30 |
상처투성이의. (0) | 2024.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