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이 몸이 서서히 메말라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쩔 때는 통증이 너무 거셌고, 어쩔 때는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는 상실감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신은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자세히 알고 있는 자였다. 이 생에 하염없이 붙들려 있는 것 말이다. 죽음은 짐짓 다정한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이 고통만큼은 삶을 떠나지 않을 테니. 생보다도 다정한 죽음이 잔인하다.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불쌍한 것. 어쩌면 스스로도 그리 여겼을지 모를... 불현듯 숨을 쉬기 어렵다는 감각이 치민다. 오로지 고통뿐이다. 죽음이 가까워지다가 멀어지는 감각은 어떻게 해도 익숙해질 수가 없어서.
"언니, 오빠... 죽음이 너무 두려워."
죽음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익숙해져? 익숙해질 수 있을까? 눈을 뜨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 절박한 목소리에, 담홍은 신의 손을 꼭 마주 잡는다. 죽음은 평생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 모두가 그래. 그렇다면 이 감각을 어떻게 견뎌내야 해? 그냥... 그냥, 울어야 해. 하염없이 울면서... 눈물에 모든 게 씻겨나갈 때까지. 판도라는 신의 어깨를 느릿하게 토닥인다. 체념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은 사실 잔인할 뿐이었다. 둘은 신을 끌어안는다. 이 연약한 아이의 눈물을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두려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아이를 지키듯 끌어안았다. 우리가 곁에 있을게. 네가 죽음에 드는 날까지. 하염없이 떠나게 되는 순간까지. 우리만큼은 너의 종말을 지켜보고, 너의 웃음을 새기고 노래하며 기억하겠노라고. 문득 안도감이 든다. 죽음 이후에도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이토록 안도감이 들었다. 신은 자주 울었다. 하지만 조금씩 덜 울게 되었다. 죽음이 익숙해지는 과정이 잔인했으나 그럴 때마다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이것을 축복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가끔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싶기도 했다. 오래도록 살면서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싶었다. 많은 것을 보고 싶었다. 더욱 많은 것을 바란다. 자유나 건강을 바란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족이라 여긴 이들의 품에 안겨서 웃거나 울기도 하면서, 그 다정한 이들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심장을 갉아먹는 생각이 조금씩 옅어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체념이라고 부를지도 몰랐지만 신은 그것을 과정이라고 불렀다. 미련이나 생을 찢어발기는 고통을 놓아주기 위한 과정 말이다. 북부의 설원은 찬란했고 남부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서부에 다다랐을 때, 죽음이 만연한 대지는 신에게 이상한 마음을 들게 했다. 이 죽음뿐인 땅 위에서도 누군가가 살아간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하염없이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 신은 문득 자신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다. 솔직함을 밀어내지 않을 이들이 있으니.
다시 동부의 땅을 밟았을 때 알 수 없는 감각이 든다. 모든 대륙을 둘러봤다. 막연히 보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는데, 다 둘러보게 됐다. 미련 하나가 사라진다. 신은 이 추억까지 끌어안는다. 몸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봐서 다행이다. 불행하다 여긴 생에도 다행이 깃들다니, 그 사실이 가장 다행이었지.
시간은 또 쏜살같이 흐른다. 직접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조금씩 더 쉽게 피로해지며, 감각이 무뎌지다가 날카로워진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가까워진다.
"... 신, 괜찮니? 곁에 있는 것이 좋을까?"
"괜찮아요. 바쁘실 텐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신은 자신이 그리 단정한 웃음을 띠고 차분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인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런 차분하고 정갈한 모습이 낯설었다.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죽음의 감각이 매서웠는데, 여전히 참을 수 없이 두려웠는데도 웃을 수 있다니. 그것도 유일한 혈육의 앞에서. 이제는 타인이라고 인식해서 그랬을까. 피로 이어져있는 이에게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어서 그랬을까. 문득 입안에 쓴맛이 감돈다. 신은 이 적막한 방에 혼자 남았다. 이 침묵을 견디기 힘들 때쯤,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문득 눈물이 눈을 비집고 나온다. 판도라는 다정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었고, 담홍은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나, 여전히 무서워. 사실 괜찮은 건 하나도 없어."
눈물이 굴러 떨어진다.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하염없이 다정한 손길로, 느릿하게.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무서워해도 돼. 마음껏 울어. 마음껏 흔들려. 우리가 끝까지 함께할게. 네가 죽음에 드는 순간까지...
"무서워. 나 무서워, 너무 두려워..."
괜찮아, 신. 우리가 함께 있을 거야. 네가 잠들 때, 오랫동안 자고 있을 때, 그리고 다시 잠에서 깼을 때... 우리는 언제나 곁에 있을 거야. 약속할 테니까... 부드러운 손길이 하염없이 신을 도닥인다. 울음 섞인 다정한 웃음, 단단한 손길, 믿음이 뒤섞인다. 신은 맹렬한 졸음 속에서 눈을 서서히 감는다. 잘 자렴, 꼬마 아가씨. 잘 자, 우리 막내.
죽은 자는 육신을 깨고 낙원을 향해 날아간다. 오래도록 떠나온 자는 메밀꽃 포말이 일렁이는 낙원 속에서 하염없이 걷다가, 모든 것이 씻겨나갔을 때 또다시 세상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오로지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위해서.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하염없이 있어준 이들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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